MADE IN FRANCE


L'impératrice

(렝페라트리스)

프랑스 밴드





“음악이 좋아서 음악 평론을 시작했고, 

음악을 평론하다가 음악을 만들게 됐다.


작곡 과정을 이해해보고, 글로써가 아닌 

음악으로 직접 뭔가 표현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샤를



프랑스 인디씬의 생생한 현장


100% 리얼트립 포토그래퍼 SUKI의 좌충우돌 프랑스 인터뷰 여행


첫번째 이야기 : 랭페라트리스



‘디깅’을 하다 예술가가 된 샤를 드부아스갱을 필두로 세련된 프렌치 디스코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 있다. 안 만나볼 수가 없다. 전세계를 투어하며 올 여름을 바삐 지내고 있는 프랑스 밴드 <랭페라트리스>의 여섯 멤버들을 인터뷰했다. 여러 도시를 누비는 스타 밴드의 삶은 어떨까? 음악적 영감은 어디서 얻고, 어떻게 곡으로 풀어낼까? 함께 알아보자.



좌측부터


아칠 트로셀리에(Achille Trocellier) - 기타

샤를 드부아스갱(Charles de Boisseguin) - 키보드

플로르 뱅기기(Flore Benguigui) - 보컬

아늬 권(Hagni Gwon) - 키보드. 한국계

다비드 고게(David Gaugué) - 베이스

톰 다보(Tom Daveau) - 드러머


INTERVIEW



#L'impératrice #


2022년 5월 21일 토요일,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공연장 Les Docks에서 밴드 L’imperatrice의 공연이 있었다. 시작 세 시간 전,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서 랭페라트리스와 만나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랭페라트리스만의 특색있는 사운드, 음악적인 정체성과 메시지, 팀워크, 바쁜 투어 일정 속 생활까지. 크게 카테고리를 나누어 흥미로운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드리고자 한다.


Question #프랑스적인 사운드?




‘국적’이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Charles: 네,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그렇죠. 태어난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니까요.


Hagni: 씬이라는 게 중요한 부분 같아요. 미국, 영국, 또 다른 나라들에도 엄청나게 많은 아티스트가 있고 도시마다 음악 씬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도 폭넓고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어요. 그 덕에 저희 모두 어릴 때부터 많은 프랑스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었죠. 살고 있는 곳의 음악들이 저희에게 영향을 줬고, 그게 랭페라트리스 음악의 일부가 됐어요. 


Flore: 그리고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있으니까. 많은 외국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기도 한데, 저희가 갖고 있는 사운드의 핵심, 본질은 결국 ‘프랑스적인’ 사운드예요.



그럼 “프랑스적인” 사운드라는 게 뭘까요? 랭페라트리스의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프랑스스럽다, 프랑스 음악 같다!”고 말하거든요. 


Flore: 이 부분은 프랑스인이 정의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스스로 의식을 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제 생각에 무언가 프렌치 스타일의 우울한 감성(멜랑콜리)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주관적인 의견이라 정확히 이게 맞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요.


Charles: 아뇨, 저도 맞다고 생각해요.


Hagni: 저도.


Flore: 모든 프랑스 뮤지션이 음악에 멜랑콜리한 감성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무언가 비슷한 ‘프랑스적인 것’을 느끼거든요. 아마 ‘멜랑콜리’가 프랑스 음악만의 독특함일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 렝페라트리스 디스코그래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 출처 : 스포티파이

Question #랭페라트리스 음악의 정체성?



그럼 음악에 대한 정체성을 언제, 어떻게 확립하게 됐나요?


Charles: 밴드의 정체성은 정말 여러 해에 걸쳐서 계속해서 쌓아올렸고요, 지금도 쌓아올리고 있는 중이죠.


Flore: 여전히 지금까지도 다듬고 있어요.


Charles: 맞아요. 늘, 계속 변화하죠. 여섯 명이 겪는 창작 과정들이 다 반영돼요. 저희가 제일 중요시하는 건 ‘그루브’예요. 멤버 모두의 소리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만들어내는 독특한 색깔, 그것도 엄청 중요해요.


Flore: 주어진 환경, 사용하는 장비들, 살아가고 있는 시간까지... 모든 것들에 영향을 받아요. 밴드가 계속해서 늘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똑같은 음악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아이덴티티, 음악, 스타일은 계속해서 변화하죠. 


Question #샤를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번 질문은 한국 버전의 위키피디아인 ‘나무위키'에서 가져왔는데요, 나무위키에 랭페라트리스 페이지가 있고, 누군가가 자세한 정보들을 잘 적어놨어요. 거기에 적힌 정보들을 기반으로 질문을 해볼까 해요.


Flore: 좋아요.


“음악 평론가였던 샤를 드부아스갱이 음악 창작 과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평론에 정당성을 느끼기 위해 시작했다.” 라고 써 있어요.


Charles: 하하. 네, 맞아요.


어떻게 음악 평론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Charles: 어떻게 시작했더라… 일단 언젠가 친구들과 문화를 다루는 잡지를 만들기로 했어요. ‘키스’라는 이름의 잡지였는데요, 키스 리처드, 키스 해링 할 때 그 Keith요. 잡지에서 문학,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에 대해 다루기로 했고, 당시 저는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해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죠.

Question #필드에 뛰어든 평론가의 기분?



음악 평론을 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 때 완벽에 대한 압박이 있었을 것 같아요


Charles: 그냥… 처음엔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한텐 글 쓰는 것 말고 뭔가가 필요했거든요. 글 쓰는 것 외의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스스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음악은 글쓰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고요. 그래서 시도해본 거예요.


[사진] Keith Magazine 실물사진 

Question #영감의 원천



고난과 역경은 인생에선 힘들지만 아티스트로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종종 쓰여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랭페라트리스는 바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죠. 어디서 음악의 영감을 찾나요?


Flore: 영감이라는 건 슬픔에서만 오지 않아요. 물론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예술의 형태로 승화시키면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하죠. 고통으로 창작하는 것도 카타르시스의 멋진 한 형태예요. 지금은 또다른 영감을 받고 있어요. 투어를 하면서 여행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들, 이런 것도 정말 많은 영감을 주거든요! 그냥 언제 어디서든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될 수 있어요. 사실 곡을 쓰려고 마음 아픈 일들만 떠올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고통은 음악의 자양분이기는 하지만 모든 창작물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지금을 느껴야죠. 환상적인 투어를 하고 있고, 성공적인 솔드아웃 공연들을 진행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잖아요? 물론 행복감 외의 것들도 있겠죠. 피곤하기도 하고,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고요. 투어 속에서 고독할 수도 있고,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갖가지 짜증나는 것들도 있고…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매일매일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요. 


Charles: …요약하자면, 영감은 어떤 경험에서든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경험은 무엇인가 창조하는 데 좋은 재료예요.

[사진] 렝페라트리스 공연중 

Question #랭페라트리스 음악에 메시지가 있다면?



그렇다면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메세지가 있나요?


Flore: 특별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죠.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길 바라요.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지요. 우리 음악을 어떤 기분일 때든 듣고, 어떤 종류든 감정을 받게 하고 싶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저희 곡들은 슬플 때 들을 수도 있고, 기쁠 때 들을 수도 있어요. 여러 감정을 동시에 한 곡에 넣으려고 하거든요. 듣다가 보면 즐거움과 슬픔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죠… 네, 메세지보다는 감정을 전달하고자 해요.


Question #팀워크, 의견 조율 방법?



팀워크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나요? 팀워크를 만들어내는 일은 즐겁지만, 가끔은 멤버간 공통적인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요. 멤버가 6명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고요.


Achille: 밴드는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가족처럼 느껴져요. 여자 형제나 남자 형제가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죠. 맨날 싸우고 말다툼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잖아요. 저희는 한 명이 아이디어를 보여줬을 때 나머지 다섯 명이 "오! 그거 좋다!” 하고 모두 동의하면 작업에 들어가요. 여섯 명 모두가 다른 분위기와 다른 생각, 다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워요. 여러가지 편곡 시도들을 하고, 누군가 별로 만족하지 않으면 “그럼 다른 걸 시도해볼까?”라고 하죠. 아주 민주적이죠. 


누가 첫 번째로 모든 것들을 이끌고 관리하나요?


Flore: 샤를이요.


Charles: 모든 것을 이끄는 건 아니고, 가끔 최종적으로 뭔가 결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죠. 


Question #살인적인 투어 스케줄, 버겁지 않은지?



이번 질문은요, 빡빡한 투어 스케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걱정이 들더라고요. 괜찮으신가요?


Charles: 너무 좋아요.


Flore: 당연히 좋죠.


Charles: 그리고 괜찮아야죠. 하하.


Achille: 이렇게 많은 투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걸요.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하고, 다른 나라의 팬들을 만나고…랭페라트리스는 최근에 미국도 갔다 왔고, 멕시코에 있었고, 바로 돌아와서 프랑스와 벨기에를 거쳐 지금 스위스에 있죠.


Charles: 맞아요. 사실 ‘여행’이 투어에서 피곤한 부분이죠.


Flore: 맞아요.


Charles: 이게 공연 때문에 피곤한 게 아니에요.


Flore: 공연 자체는 언제나 즐거워요.


Charles: 여기에서 저기로 계속해서 이동하는 게 제일 피곤하죠.


Flore: 공연은 가장 신나는 순간들이고요.


Charles: 그쵸.


공연 얘기가 나와서 이어가자면, 어떤 사람들은 공연을 할 때 무대에서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다가, 공연이 끝나고 무언가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들었어요.


Charles: 그럼요, 늘 그래요.


Hagni: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파티나 술자리를 잘 가지 않아요. 그냥 한두 잔 마시고 자러 가죠.


Charles: 맞아.


투어 스케줄 속에서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Achille: 스파이크 볼을 해요. (모두 웃음) 그리고 자요.


Flore: 자려고 ‘노력’하죠. 하하.


Hagni: 스케이트 보드를 타요.


Flore: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고요.


저는 여러분을 따라 겨우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를 3일간 이동했을 뿐인데 지금 정말 죽을 지경이거든요.


Hagni: 그냥 뭐랄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요.


Charles: 맞아.


Hagni: 계속해서 투어하다 보면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해야 컨디션이 조절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체력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리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투어 중에는 어차피 달력에 스케줄이 있으니까, 오늘 하루가 어떻게 돌아갈지 잘 알잖아요. 어떤 공연이 있고, 몇 시에 시작하고 그런 거요. 그래서 쉴 수 있을 때 가능한 충분히 쉬려고 해요. 자기 생체 리듬을 잘 아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가능한 한 이런 행복함을 오래 누리고 싶으신가요?


Achille: 지금은 완전 당연히, 네. 즐기고 있어요.


Flore: 그럼요. 정말로요.


Hagni: 네.


Achille: 진짜 너무 좋아요.


Hagni: 밴드의 DNA는 라이브 공연을 하는 거니까요.


Flore: 맞아요.


리한나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요, 그녀는 투어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투어를 하고 싶지 않아서, 뷰티 비즈니스 같은 사업을 찾았다고 해요. 다른 케이스이긴 하지만, 최근 앨범을 내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라는 것 같아요.


Flore: (웃음) 저희도 언젠가 우리만의 뷰티 브랜드라든지 뭔가를 시도해 봐야겠네요. 


Hagni: 네. 약간 달라요. 리한나는 솔로 뮤지션이기도 하고요. 리한나 같은 슈퍼스타는 물론 라이브 공연도 중요하지만 뮤직비디오를 공들여 찍고, 녹음을 하고 신곡을 내고, 방송 등에 나가는 것도 아주 핵심적인 요소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밴드라서 그런지, 다들 라이브가 제일 재밌다고 생각해요. 그게 밴드의 DNA죠. 


우리는 처음부터 밴드로 활동을 시작했고, 라이브가 우리의 핵심이고, 우리의 메인 목표예요.

“계속해서 밴드로서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것”. 

그게 저희한테 가장 중요한 점이죠!

Editor’s Letter

수키 (포토그래퍼, <메이드 인 프랑스> 스페셜 인터뷰어)







랭페라트리스와 나 사이에는 음악 산업에서 일하는 공통 지인이 한 명 있다. 4년 전 프랑스 음악 씬에 대한 업데이트가 절실했던 나는 그에게 “요새는 영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공연 사진을 찍고 있어. 영국 음악씬에 대한 정보가 좀 있는데, 프랑스 음악씬이 어떤지 궁금해. 파리에서 만나서 정보 교환하지 않을래?” 하고 물었다. 만남에서 그는 랭페라트리스를 추천했다. ‘아! 랭페라트리스에 한국인 멤버가 있어!’. 그가 덧붙였다.


디깅은 인터뷰 특성상 한 명을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한다. 이제서야 말하자면 나는 랭페라트리스의 그 한국계 멤버인 ‘아늬 권(권하늬)’의 개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다. 어쿠스틱 세션에서의 바이올린 실력에 감동을 느껴 찾아보니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 2013년 한국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다는 것, 한식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까지,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랭페라트리스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면서는 오히려 ‘이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에릭 남이 해외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다른 배우가 ‘너 정말 영어 잘한다!’ 말했고 논란이 됐던 것처럼. 아늬 권 역시 그를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이 실례가 아닐까 해서, 막연하게 그냥 언젠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디깅매거진 <메이드 인 프랑스> 스페셜 인터뷰 두 팀 중 상디엑스의 경우 사전에 인터뷰 섭외를 해 승낙을 받아 미리 인터뷰를 잘 준비한 케이스라면, 랭페라트리스는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도 가능하리라는 확신이 없었고, 요청에 대한 답변 역시 프랑스로 떠날 때까지 받지 못했다. 그래도 포토그래퍼 패스 요청은 허가를 받은 상태였고 나는 프랑스 리옹, 벨기에 브뤼셀, 스위스 로잔, 이렇게 세 개 공연의 정식 포토그래퍼로 사진을 찍는다는 기쁨과 설레임에 마음이 가득 찼다. 


프랑스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비행기 연착으로 환승 시간이 1시간 남짓, 매우 촉박해졌다. 스키폴 공항에서 거의 울먹이며 전력질주를 했고 온몸이 땀범벅인 채 가까스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도착한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맞이한 내 캐리어는 왜인지 박살이 난 상태였다. 캐리어를 새로 사는 일이 리옹에서 첫 번째로 한 일이다. 바로 호텔로 돌아와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보았을 때, 그제서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와! 진짜 랭페라트리스 보는구나!’ 조심스레 앞으로 가서 ‘이름이 포토그래퍼 리스트에 있다’고 영어로 말했다. 말이 잘 통하진 않았지만 들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니 부스로 안내를 받았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빛나는 포토그래퍼 패스(?)를 받아 입장할 수 있었다. 


리옹의 공연장은 Le Transbordeur라는 공연장으로, 1~2층을 합쳐 대략 2천 여명을 수용한다. 우리나라는 큰 공연장의 경우 술을 팔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스는 거의 모든 공연장에서 술을 판매하는데, 특히 이곳은 야외 공간이 있어 대기하면서 적당히 취하기에 알맞다.


오프닝 공연인 상디엑스의 퍼포먼스가 끝나고, 메인 무대인 랭페라트리스가 스테이지에 올랐다. 이번 투어의 이름이자 앨범 타이틀인 ‘TAKO TSUBO’(타코 츠보 심근증: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이별, 불안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라는 이름답게 멤버들은 왼쪽 가슴에 하트 모양 불이 들어오는 의상을 입고 있었고, 그 불이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깜박이는 퍼포먼스로 공연이 시작됐다. 


큰 규모의 공연에서 패스를 받아 촬영할 경우, 암묵적인 룰이 있다. “First 3 Songs, No Flash.” 언젠가 영국 포츠머스에서의 경험 이후에 공연문화적으로 약속된 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번 경우 아예 펜스 앞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조언이 필요했다. 친구이자 포토그래퍼 선배인 애비게일 (Abi. 나는 그녀를 teacher라 부르는데, 멋진 사진가로, 아티스트 전속 투어 포토그래퍼, 페스티벌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을 붙잡고 “오프닝 밴드도 세 곡만 찍을 수 있어? 그럼 오프닝 세 곡 찍고 나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 같은 질문들을 떨리는 마음으로 와다다다 물었다. 


세 곡이 끝나고 나서 제지가 들어올 거라고 했던 애비게일의 답변과 다르게 제지가 없었다. 나는 남아서 사진을 더 찍었다. 다른 포토그래퍼가 계속 있길래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Abi는 세 곡이 끝나면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알아서 나가는 게 좋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누가 봐도 외국인이라 ‘몰랐다’고 대처를 할 수 있어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근무 후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 처리를 하고 비행기 탑승, 장시간 비행 후 파리에서 리옹으로의 기차 이동까지. 너무나 지친 상태에서 술이 들어가고, 좋아하는 팀의 공연을 마침내 보면서 에너지를 불태웠다. 앵콜까지 보면 우버를 잡지 못할 것 같아 너덜거리는 몸으로 공연장을 나왔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벨기에로 넘어가야 했다.


다음 날, 시차 적응을 못한 게 다행인지 일찍 눈을 떴고, 기차를 타고 브뤼셀로 이동했다. 리옹에서 브뤼셀까지는 약 4시간이 걸린다. 나라를 이동하는 기차들은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다. 기차 안에서 리옹 공연 사진을 셀렉하고 보정하는 작업을 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몇 개 업로드했고, 놀랍게도 랭페라트리스 멤버들의 반응이 빠르게 왔다. PR 담당자의 반응도 좋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브뤼셀 미디역에서 센트럴역으로 이동하던 차에 휴대폰이 울렸다. 담당자의 메일이었다. “수키! 사진들 정말 멋지더라고요. 멋진 사진부터 한국에서 날아와준 것까지 모든 것들을 포함해 정말 고마워요. 오늘 브뤼셀에서나 내일 로잔에서 밴드와의 짧은 인터뷰 혹은 미팅 시간을 30분 정도 만들려고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어요. 결정되는 대로 알려줄게요!”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 메일을 확인한 즉시 디깅 매거진 인터뷰 크루에 긴급 카톡을 남겼다. 랭페라트리스는 인터뷰를 못할 거라 생각해서 질문을 러프하게만 짜놓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아마 난 그들 앞에서 로봇이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리던 와중, 인터뷰가 다음 날로 잡혔다. 서둘러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카톡으로 크루들과 인터뷰 질문을 함께 이야기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브뤼셀에서는 공연장과 호텔이 걸어서 5분 거리여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마트에서 와인을 사서 호텔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인터뷰를 준비하며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고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총 세 번의 공연 중 가장 최고의 공연이 이 날이다. 시큐리티가 세 곡이 끝나자 포토 핏에서의 퇴장을 유도하여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컨디션도 좋았으며 적당히 취했기에 앵콜까지 남아 방방 뛰며 신나게 공연을 즐겼고, 깊은 여운이 남은 채 호텔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 스위스 로잔으로 이동하는 날은 일찍 일어났다. 브뤼셀에서 로잔으로 넘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비행기 외엔 딱히 좋은 방법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제네바로 이동해,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로잔으로 넘어가야 한다. 유럽 내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려면 짐을 다시 싸야 되고, 공항은 시내와 멀다. 스위스에 도착해서 나는 몇 가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1. 유럽 국가들은 나라를 넘어가도 계속 심카드 사용이 가능하지만 스위스는 유일하게 프랑스의 심카드가 적용되지 않는다. 물가가 비싸서 그렇다. 카드는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로밍비가 적용되어 한국에 돌아와 7만원의 추가금액이 결제되었다.


  1. 프랑스와 벨기에는 한국의 플러그를 사용할 수 있다. 스위스도 프랑스어권 나라라 같을 거라 생각했건만. 달랐다. 어댑터를 캐리어에 깊숙이 넣어두고 꺼내지 않았고, 체크인 전 붕 뜬 시간에 카페에서 기기 충전을 하려던 계획이 막막해졌다.


  1. 역에서 호텔까지 걸어서 10분이길래 걷기로 마음을 먹었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엄청난 오르막길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캐리어를 끌고 등산을 하다 ‘아, 스위스는 산이 유명하지…? 그래서 이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잔에 오래 살았던 친구를 만나니 “오 노!!!! 로잔 사람들은 절대! 절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여도 안 걸어가. 지하철 타야 돼. 장 뤽 고다르 감독이 로잔 출신인데, 로잔의 언덕길 때문에 로잔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다리를 가졌다, 그런 말을 했지...”. 정말 아무도 안 걸어다닌다는 건가?


마침내 등반에 성공한 등산가처럼 호텔에 도착한 후, 공연 시작 전에 랭페라트리스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PR담당자는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메일이나 DM을 보내주면 왔다는 걸 전달하겠다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발 전에 와인을 들이키고,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 구석에서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담당자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백스테이지 출입구가 어느 쪽인지 알아요? 찾아갈 수 있겠어요?’ 라는 답장. 대충 저쪽이겠군 싶은 곳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혹시 이쪽이 백스테이지 출입구인가요?” 물어보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보컬 플로르가 나왔다. “아! 수키구나?!”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다들 흡연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다. 프랑스는 흡연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여담으로… 나는 아이코스를 사용하는데, Hagni는 아이코스! 라 말하며 아이코스를 알고 있었고, Flore는 그게 뭐야? 라면서 아이코스를 신기해했다.


인터뷰를 할 공간엔 스태프들과 한국계 멤버 Hagni가 있었다. 인사를 했고, 그가 나에게 한국어로 대답을 해서 깜짝 놀라 “엇, 한국말 할 줄 아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말하는 건 잘 못하지만 알아듣는 건 다 알아들어요.” 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한국어로 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어로 계속 대화하는 것을 꺼려한다) 영어로 Hagni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이어나갔다. 


Suki : …그래서 Clement이 저한테 “랭페라트리스에 한국인 멤버 있어!” 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와! 만나보고 싶어!’ 생각했는데, 제가 랭페라트리스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는… 하늬 씨는 프랑스에서 자랐고, 국적도 프랑스고, 겉모습이 한국인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거든요. 개인적으로 하늬 씨가 스스로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Hagni : 음, 근데 제 뿌리는 한국인이잖아요. 제가 국적을 프랑스로 선택한 이유는 일단 대한민국이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전 언젠가 나중에는 한국에서 살고 싶단 생각도 하는 걸요.


Suki : 허, 진짜 생각지도 못했어요. 진심으로 알게 되어 기뻐요!


나는 ‘Suki Stranger’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디깅 크루에게도, Abi에게도 랭페라트리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계 멤버인 Hagni의 (Abi는 미국/한국 혼혈이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결국 그녀의 정체성이 담긴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국적, 정체성, 뿌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기에 운좋게 인터뷰를 하기 전 Hagni와 마주쳐 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 영어로 Good to know! 라고 했는데, 정말 그것이 이루어진, 개인적으로 몹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Suki : 그리고 랭페라트리스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요. 한국에서도 공연했으면 좋겠어요.


Flore : 정말요?


Hagni : 조부모님 중 한 분이 한국에 계시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 거예요.


Suki : 이전에 Hagni는 한국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한 적이 있으시죠.

Hagni : 금호아트홀에서. 맞아요. 했어요.

Suki : 어쿠스틱 세션 영상에서 바이올린 연주하는 걸 보고 너무 감격해서 뭐지?! 하고 구글링을 했고… 바이올리니스트였고 한국에서 독주회도 했었다는걸 발견하고 놀랐었거든요.

Hagni : 하하. 밴드 시작하고 나서는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한 적이 거의 없어요.

Suki : 아쉬워요. 정말 멋진데!


…그리고 랭페라트리스를 위한 작은 선물을 한국에서 가져왔는데… 저는 술을 엄청 좋아해요.


Hagni : 다른 한국인들처럼요?


Suki : (웃음) 네. 요새 젊은 한국 사람들이 전통주에 관심이 많고, 저도 그래요. 전통주를 가져왔어요.


Hagni : (라벨을 보면서) 금설?


Suki : 금설! 인삼으로 만든 술인데, 진짜 금가루가 들어있어요! 좀 독한 술인데, 샷으로 마시면 돼요.


Flore : 오늘 공연 끝나고 다같이 한 잔씩 마시면 딱이겠네요!


Suki : 아, 맞아! 랭페라트리스 작업실 라이브 영상에서 다들 카스를 마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Hagni : 아. 그 맥주 제가 가져간 거*예요. (*아늬 권은 한국계 프랑스인이며. 파리에서 Mee라는 한식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오너이기도 하다.)


Suki: 전 한번도 카스가 좋은 맥주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Hagni : 뭐, 나쁘진 않아요.


Suki : 차라리 테라가 낫죠.


Hagni : 클라우드도 괜찮아요. 


…Hagni와 한국 맥주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국에 돌아와 주변인들에게 클라우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 찐 한국인이네.” 라는 반응들. (푸핫) 그렇게 스위스 로잔에서의 짧고 귀한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랭페라트리스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그 시간을 방해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미안한 마음과, 기꺼이 시간을 내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