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지구 반대편의 가족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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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가 지구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밴드 차세대 베이시스트 '오용택'의 단편소설






Chapter 1



  우리 할아버지의 치매 증세는 다른 보통 노인네들에 비하면 상당히 터프한 것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갔더니 할아버지가 삽으로 부엌 바닥을 파내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대번에 할아버지가 노망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우리 가족, 그러니까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미치광이 여동생은 즉시 거실에 모여 회의를 했다. 할아버지가 힘이 없기도 하고 삽이 무디기도 해서 그 이상한 행동은 시멘트 바닥에 흠을 내는 정도의 결과 밖에는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 일을 할때마다 할아버지가 부엌 장판을 뜯어버리는 터라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를 어떻게든 막을 필요가 있기는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생은 할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까지 묶어놓자고 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의견에 반대했다. 하지만 반대를 하는 이유는 두 분이 서로 달랐는데,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묶어놓는 것이 패륜이나 다름 없는 짓이라며 반대를 하신 반면 어머니는 어차피 할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으니 묶어 놓아야 임시 방편일 뿐 소용이 없다고 반대를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동생의 의견에 동의를 했다. 왜냐하면 치매에 걸린 노인은 흔히 집안에 똥칠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벽이나 바닥, 천장, 심지어 밥그릇 같은 것들까지 할아버지의 똥으로 범벅이 된 집에서 사느니 아버지가 말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 번 했다가 그걸 들은 아버지에게 엉덩이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맞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겉으로 동생의 의견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아버지에게 맞은 것 때문에 나는 한동안 어디에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변기에도 앉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변기로부터 엉덩이를 조금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을 보곤 했는데 그 때는 키가 작았고 인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준이 잘못되어 똥이 이상한 데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비록 나에게서 나온 배설물이었지만 나는 그게 끔찍하도록 더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그 때의 기억 때문에 더더욱 할아버지가 똥칠을 하고 다닐 일이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동생은 할아버지를 묶어놓자는 말까지 했는데도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맞기는 커녕 꿀밤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앞서 말했던대로 내 동생은 미치광이였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애를 때렸다가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게 아닐까 항상 두려워했다. 실제로 어머니가 내 동생의 잘못을 가지고 별로 심하지도 않게 야단을 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즉시 그 아이의 광기를 촉발시켰다. 그 결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 가족 외에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비밀에 부치자고 다섯 식구 모두가 약속했기 때문에 여기에 쓰지 않겠는데,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그 소란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게 사람인지 동물인지는 알려주지 않을거다.

  그 날 회의는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자는 평범한 결론으로 끝났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양로원에서도 장판을 뜯고 시멘트 바닥에다가 삽질을 했다. 양로원장이 삽을 빼앗아 꽁꽁 숨겨놓거나 심지어 부러뜨려버리기까지 했는데도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항상 어디에선가 삽을 구해왔다. 그걸 막으려면 할아버지의 외출을 금지하고 양로원에 가둬놓다시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 양로원장은 우리 가족의 동의를 구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 더 회의를 열었고 양로원장의 조치에 따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양로원에 갇히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그 동안 할아버지가 찢어발긴 장판값을 물어줘야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동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다룰 수 없게 하는 난감한 무기였다. 양로원장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밖에 자유롭게 나다니는 것을 허용했고 할아버지는 다시 삽을 구해다가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할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물론 장판값은 물어줬다.

 

Chapter 2


 

  아버지가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매번 삽을 구해오시는거지?"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님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이 몇개나 되죠?"

  동생이 말했다.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게 아닐까?"

  삽으로 시멘트 바닥을 찍어대는 소리는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행동을 못하게 했을 때 할아버지가 세상 그 어떤 늙은이보다도 비통한 신세가 된 것처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꼴을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없었다. 아니, 물론 내 동생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 아이는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든 피눈물을 흘리든 하루종일 깔깔대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시끄러운 소리에 대해서는 가끔씩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건 주로 그 아이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였다. 그 때마다 내 동생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당장 그 헛짓거리를 관두지 않으면 삽대가리로 어디어디를 후려버리겠다는 식의 말을 저주처럼 퍼부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시멘트 바닥을 팠으며, 그 때 내 동생의 나이는 열 한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가만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을 것 같았던 할아버지의 행동은 놀랍게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냥 '홈'이라고 부를 정도의 크기이기는 했지만 제법 바닥이 파이긴 파인 것이었다. 그건 탈옥 영화에서 숟가락으로 감옥 벽을 파는 주인공의 행동처럼 암담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로써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도대체 바닥 밑에서 뭘 찾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어느 정도 할아버지를 응원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성과를 오히려 재앙처럼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이러다간 진짜로 발이 푹푹 빠질만한 구덩이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다시 한 번 거실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우리는 좀 더 심리학적으로 이 상황에 접근해보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니까 무조건 조치를 취하려고 하기 보다는 할아버지가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먼저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훨씬 일찍부터 생각해온 바였다. 나는 그게 아버지가 새롭게 내놓은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되어버려서 조금 속상했지만 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선은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붙이며 접근해 보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열 두시 반이나 한 시쯤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삽질을 시작하는 할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슬그머니 다가갔다. 어머니는 상을 정리하느라 둘의 이야기를 못 듣는체 했지만 사실은 있는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 또한 거실 한켠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주목하고 있었고 동생은 먹은 것을 소화 시키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없었다.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면서 마침내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힘들지 않으세요?"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 밑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열심히 땅을 파세요?"

  "아르헨티나."

  그 대답에 어머니는 들고 나르던 접시를 놓쳐 깨뜨릴 뻔했고 아버지는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어쩌면 그런 반응들은 실제로 있었던게 아니라 다름 아닌 내가 놀라서 몸을 휘청거리느라 그렇게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삽질만큼은 조금의 변동도 없이 뻐꾸기 시계처럼 규칙적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나라 이름 아닌가요?"

  할아버지는 다시 대답이 없었다. 그 날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고 얻을 수 있는 성과도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일단 한가지 사실은 알아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르헨티나를 찾기 위해 부엌 바닥을 파고 있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그 얘기를 전해듣고는 배를 부여잡고 웃으며 소파 위를 굴렀지만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식구는 진지했다.

  "근데 아르헨티나가 왜 거기에 있지?"

  "그것보다, 아버님이랑 아르헨티나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어머니의 질문에 우리는 오래된 앨범이라든가 할아버지의 일기(그런데 그런건 없었다), 친척들의 얘기 등등 가능한한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할아버지가 아르헨티나에 다녀오신 적이 있는지 그 여부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르헨티나는 커녕 제주도에도 다녀오신 적이 없다는 것이 친척들의 이야기였고, 또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실제로 수집한 단서들로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야.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고, 스페인어를 써. 국민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데 개신교나 유대교 신자도 조금 있어."

  동생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줄줄 읊었지만 아무래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우리의 여름방학이 끝나버렸다.

 

Chapter 3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집안의 흥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거실에서 걸핏하면 열리곤 하는 우리들의 가족 회의는 몇십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최초의 회의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는데 그 때는 참석자가 세 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참가자란 마흔도 채 되지 않았던, 정신도 멀쩡했고 삽으로 부엌 바닥도 파지 않았던 시절의 할아버지와 나한테는 작은할아버지가 되는 할아버지의 남동생, 그리고 식모,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이 중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바로 식모인데, 나는 식모의 존재가 우리 집안이 과거에는 밥 해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귀찮아서 따로 돈을 주고 사람을 시킬 정도로 부유했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그러니까 살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남자 둘 뿐이었기 때문에 돈에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밥다운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식모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어느 날 이러한 가정에 느닷없이 새로운 식구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저귀를 찬 우리 아버지였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오자 작은할아버지와 식모는 경악을 했다. 그 경악은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게 되었음을 직감한 어떤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는데, 작은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먹을 한 통의 분유값을 차라리 도박판과 여자들에게 투자했을 경우에 미묘하게 변화할 자신의 인생판도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산을 해보는 한편, 식모는 그에 비해서는 조금 단순하게 자신이 짤리게 되는게 아닐지를 두고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모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루 종일 책만 읽는 할아버지와 밖으로 나다니며 돈만 쓸줄 아는 작은할아버지 둘 중 어느 누구도 아기를 보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리가 없기 때문에 겁이 나서라도 자신을 짜를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식모의 예상은 적중했다.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가는 것에서부터 분유를 먹이는 것까지 아버지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식모에게 맡겼다. 식모는 아버지를 열심히 돌보는 한편 자신이 추가로 하는 고생에 대해 수당도 추가로 줄것을 할아버지에게 요구했다. 할아버지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를 떠넘겨버리고 다시 홀연히 사라진 그 여인을 내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좋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할머니라고 하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만나던 젊은 시절에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했고, 결국 할머니와 헤어진지 거의 1년이 다 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막중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된 바에야 결혼을 해버리자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바로 그 결혼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넘겨주러 온 것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강보에 싸인 아버지만을 품에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작은할아버지는 신이 나서 할아버지를 놀려댔다.

  "형님, 얌전한 척은 혼자 다 하시더니 그 애가 다 뭐유? 어유, 이거야 뭐 남사스러워서, 히히히."

  하지만 할아버지는 난봉꾼이 아니라 단지 한 순간 조심을 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 만약 작은할아버지가 할아버지처럼 조심성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 집안은 열댓명의 떠넘겨진 소년소녀들로 바글댔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집안의 사상 첫 가족 회의는 바로 그 어린 아버지를 두고 열린 것이었다. 회의를 소집한 건 할아버지였다. 그 동안 식모에게 보살핌을 받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애를 못 키우겠다고 말했다. 식모는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회의에서 아버지를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보내야겠다고 했다. 그러자 식모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는 법정까지 가게 될거에요."

  할아버지는 소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은할아버지가 그럼 아예 보육원으로 보내버리자고 말했지만 식모는 펄쩍 뛰면서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지만 결국 지금처럼 아버지를 맡아 키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형님, 왜 못키우겠다는거유? 어차피 애는 아줌마가 다 돌보는데."

  할아버지는 조용히 대답했다.

  "내 애가 아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신혼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죽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어디로도 보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결국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식모가 계속해서 아버지를 돌보았는데 그쯤 되면 말이 식모지 사실상 아버지의 유모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되자 식모를 수당을 주고 고용하는 정도로만 집 안에 묶어두기에는 너무나 가족적인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결국 식모는 작은할아버지와 결혼을 해버렸다. 도박과 여자에 빠져 살던 작은할아버지가 바라는 아내상은 밥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단순한 것이었다. 밥 잘하는데에야 어디 식모만한 신부감이 있었겠는가. 물론 결혼 후에도 작은할아버지는 여전히 밖으로 나돌았다. 그래서 식모, 그러니까 나의 작은할머니는 어지간히 마음 고생을 하셨다.

  한 번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지 작은할머니가 작은할아버지가 놀러다니는 곳을 몰래 따라가보기도 했다. 그 바람에 집에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아무려나 열심히 책을 읽으셨다. 그런데 그 책이 이상하게도 내용이 다 완결되지 않았는데 분량이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상권(上券)이었다. 할아버지는 하권을 찾기 위해 책장을 두리번거렸다. 할아버지의 책은 한쪽 벽을 꽉 채우고도 남았는데 그건 훗날 할아버지가 삽으로 부엌 바닥을 파게 된 그 때까지도 대부분이 보존되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때만 해도 시력이 좋으셨던 할아버지는 책장 맨 윗칸에서 하권을 발견했고 그것을 집기 위해 필사적으로 까치발을 딛었다. 하권에 손가락 끝이 닿을 무렵, 할아버지는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발을 무자비하게 옥죄는 것을 느끼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쥐가 났던 것이다. 사실 그 책장 맨 윗칸은 보통 사람들이 까치발을 딛을 정도로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할아버지는 유독 키가 작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한 자세를 취하다가 쥐가 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정신없이 발을 주물렀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결국 기진맥진하여 포기하고 드러누워서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할아버지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보니 그건 아직 물건을 잡고 일어설 줄도 모르는 우리 아버지였다. 그 연약하고 작은 손이 주물러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놀랍게도 할아버지의 발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할아버지는 멀뚱멀뚱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아버지는 멈추지않고 할아버지의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결국 할아버지도 아버지를 아들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Chapter 4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의외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든 말든 간에 당장 삽질을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이 집을 떠나버리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해 강경하게 거부하며 어머니와 맞섰다. 나는 삽이 시멘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펼쳐진 이 두 사람의 싸움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 것인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정말 떠나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시아버지 알기를 뭣같이 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뭣같이 알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어쨌든 며느리로서 할 도리는 다 했다고 본다. 본래 밖에서 일을 하던 분이라 살림을 하는데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머니는 본래 자산관리사였다. 내가 어렸을 때 짤리셨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자산관리사가 무슨 일을 하는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을 관리하는 직업이니만큼 우리 집안의 자산도 잘 관리하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치는 법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장부를 착각하여 입금을 처리하는 일을 저지르셨고 결국 직장에서 짤림과 동시에 그 고객에게는 돈을 변상해야하고, 우리 집은 빚을 지게 되는 엄청난 삼연타를 맞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거라며 어머니를 용서하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안을 그런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은 어머니가 할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우리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가버렸다는건 상당히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작은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렸던 시절 이후로 만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할머니는 나에게 상당히 두려운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건 작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작은 할아버지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박판에서 좋지 않게 연루된 누군가의 소행일거라고 짐작했고, 나중에는 실제로 그게 맞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할아버지는 작은 할머니가 작은 할아버지를 찔러 죽인게 틀림 없다고 말했다. 작은 할아버지의 외도를 견디다 못해 그런 일을 벌인 것이고, 주방에서 반평생을 칼질만 한 여자이니 누구보다 칼을 잘 다루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 얘기가 경찰에 의해 밝혀진 진실보다도 훨씬 실감나게 다가왔고 나는 작은 할머니를 한 손에 식칼을 든, 그리고 몸집이 뚱뚱해서 산처럼 우러러봐야하는 무서운 눈매의 여자로서 상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은 할머니가 우리를 돌보러 집에 나타났을 때 보니, 몸집이 뚱뚱하지도 않고 눈매가 무섭지도 않았다. 하지만 식칼은 자주 사용했다.

  작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상황을 딱하게 여겼다.

  "그렇게 똑똑하시던 양반이 저게 무슨 꼴이냐?"

  아버지는 작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와 아르헨티나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작은 할머니는 아르헨티나가 지구 어디쯤에 붙어있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 가지의 변화를 접하게 되었는데, 첫번째는 물론 할아버지의 삽질이었고, 두번째는 어머니가 없어졌다는 점, 세번째는 그와 동시에 작은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내가 중학교를 대비하여 여태까지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할머니는 첫번째와 더불어 특히 네번째에 대해서 걱정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내는 소음이 도저히 내가 공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상관 없었다. 나는 무슨 소리가 난다는 이유 따위로 집중을 못하는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일을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해야할 공부가 할아버지의 삽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아르헨티나 여행을 보내드릴테니 부엌을 그만 파라고 말했다. 물론 할아버지를 말리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겐 아르헨티나로 여행을 갈 여유 같은게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부엌 바닥을 팠다. 이미 할아버지의 허벅지까지 들어갈 정도로 깊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지구본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아르헨티나는 한국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 곳인가? 나는 한쪽 검지손가락으로 한국을 짚고는 다른 쪽 검지손가락으로 아르헨티나를 찾아 짚었다. 과연 멀기도 멀었다. 지구의 반을 가로지르는 거리였다. 그리고 가만 살펴보다보니 나는 내 두 검지손가락이 일직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지구를 관통해서 서로에게 텔레파시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놀라운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정반대편에 아르헨티나가 있었다.

 

Chapter 5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이 아르헨티나야."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린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내가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잡기 전에 동생이 먼저 자신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해낸 것이었다. 아버지와 작은 할머니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 되었다. 그 사실을 누가 먼저 알렸든간에 할아버지의 계획은 끝내주게 멋진 것이었다. 땅을 파서 지구 반대편으로 다시 나오겠다니, 역사상 어떤 탐험가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생각은 했더라도 시도는 못했을 것이다.

  "치매가 들어도 어떻게 저렇게 괴상하게 든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작은 할머니가 말했다. 나도 그게 불가능하다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일단 우리 가족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머지 않아 할아버지는 삽으로는 도저히 팔 수 없는 단단한 지층에 도달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할아버지가 그 단단한 지층에 도달하기까지 참고 기다릴 만큼의 인내를 발휘하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할아버지에게 욕을 퍼부으며 그 구덩이에 할아버지를 묻어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걸 들은 작은 할머니가 동생의 뺨을 후려갈겼다.

  나와 아버지는 공포에 빠졌다. 작은 할머니도 동생이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조심해야 할 대상인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작은 할머니에게 그 점에 대해 일러주는 것을 그만 깜빡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생이 우선 괴성을 지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동생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할아버지로부터 삽을 빼앗아 들더니, 작은 할머니의 머리를 삽날로 후려쳐버렸다. 괴성을 지른 쪽은 작은 할머니였다. 작은 할머니는 뒤로 나자빠져서는 피가 흐르는 머리를 잡고 뒹굴었다. 나와 아버지는 작은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우두커니 서있었는데, 그건 그 사태에 놀랐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삽을 빼앗겨서 더 이상 땅을 팔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동생은 나도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기상천외하고 풍부한 욕설을 퍼부으며 삽끝으로 작은 할머니의 몸을 아무데나 가리지 않고 찍어댔다. 힘이 센 아버지가 동생을 끌어냈고 나는 작은 할머니에 곁에 쭈그려 앉았지만 그 다음에 뭘 해야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때 할아버지가 구덩이에서 나와 찬장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나와 아버지 모두 경황이 없어 그걸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찬장에 숨겨두었던 신경안정제를 주사기에 넣고는 동생의 목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동생은 눈이 뒤집어지며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무너져내렸다. 어머니가 가져다 놓은 이래 처음으로 사용되는 신경안정제였다. 삽을 되찾은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부엌 바닥을 팠다.

  우리는 결국 기절해버린 작은 할머니의 머리를 붕대로 감아 침대에 눕히고, 동생도 방 침대에 눕혔다. 나와 아버지는 거실로 가서 앉았다. 아버지와 그렇게 둘이서만 대면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 두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나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 같은걸 깨달을 여유가 없었다. 그 여러가지 문제들이란, 가장 먼저 작은 할머니와 동생 사이의 돌이킬 수 없게 된 관계를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누구보다도 침착한 대처를 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결국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요?"

  "마라도나 때문이야."

  나는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아직 치매에 걸릴 나이가 아니었다.

  "난 어렸을 때 축구 광팬이었어. 특히 마라도나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라도나 사인볼을 받고 싶다고 했던게 기억난다. 물론 받을 수 없는 선물이었지. 하지만 너희 할아버지는, 아니 우리 아버지는 잊지 않고 계셨던거야. 내가 마라도나 사인볼을 받고 싶어 했다는 걸."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마라도나 사인볼을 받아다 주려고 저렇게 하루 온종일 부엌 바닥을 파고 있다는 얘기였다. 차라리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배우려고 땅을 판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감히 반박할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동생이 벌인 짓은 전에도 그랬듯이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오 용 택
베이시스트, 작가

1992년생. 밴드 '차세대'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다.
가사를 쓰고 소설이나 수필도 가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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