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지구 반대편의 가족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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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가 지구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밴드 차세대 베이시스트 '오용택'의 단편소설






Chapter 6



   나는 작은 할머니가 깨어나면 동생을 죽이겠다며 침실로 달겨들 줄 알았다. 하지만 작은 할머니는 오히려 겁에 질려 짐을 싸고 있었다. 아버지가 작은 할머니만 조심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라며 붙잡으려 했지만 작은 할머니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작은 할머니가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고, 작은 할아버지를 죽인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할머니는 집을 떠나며 현관에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너희 어머니가 신혼여행 갔다가 죽었다는 거 알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거기가 아르헨티나였던거 같다."

  그리고 작은 할머니는 잊지 못할 하룻밤을 지낸 흉가를 떠나듯이 우리 집을 떠나버렸다.

  "잘못 기억하시는거겠지."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라도나 때문이야."

  사실 마라도나 사인볼 얘기 보다는 작은 할머니의 얘기가 더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죽은 땅을 밟기 위해 부엌을 파고 있다는 편이 더 낭만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전폭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사실 그 말도 안되는 시도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할아버지가 아르헨티나에 도착할 때는 머리부터 나올지 발끝부터 나올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단한 지층'에까지 도달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구덩이는 이제 무릎까지 밖에 안오는데, 할아버지의 기력이 한계에 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그 정도까지 판 것도 상당한 성과였지만 그 중노동이 할아버지의 건강을 악화시킨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심장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응급차가 와서 할아버지를 실어갔고, 우리는 병상에 누운 할아버지를 걱정스레 지켜보았다. 얼마 뒤에 깨어난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멀쩡한 상태였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워낙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시는 터라 어쩔 수 없이 약만 처방 받아 돌아와야했다. 그 약은 할아버지가 다시 한 번 심장 발작을 일으켜 위급해졌을 때 먹는 약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회사에 때 아닌 휴가를 내고 한 동안 집에 머물렀다. 약을 할아버지가 언제든지 집을 수 있는 곳에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할아버지가 혼자 집에 있다가 심장 발작을 일으켜 약을 못 먹고 돌아가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아버지는 언제든지 할아버지가 쓰러지면 입에 알약 두 개를 넣어드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삽질만큼은 아버지가 말리지 못했는데, 그 육체 노동이 할아버지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건 모두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삽질을 못하게 했을 때 할아버지가 슬픔으로 앓다가 큰 병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 두 어번쯤 더 쓰러지셨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아버지는 가장 재빠르고 완벽한 동작으로 할아버지에게 알약을 먹여드렸다.

  아버지는 가끔씩 외갓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외갓집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엄마에게 전화를 바꿔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중에는 화가 나서 더 이상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르헨티나까지 가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러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되는게 아닐까 걱정도 됐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외갓집으로 피신해서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오래 살 경우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면 동생은 도리어 할아버지를 집 밖으로 내쫓으려했다. 동생이 할아버지의 삽질에 대해 노골적으로 증오를 나타내는 경우가 점점 더 빈번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작은 할머니와의 사건 이후로 더 심해졌다. 아버지는 동생이 작은 할머니에게 했던 짓을 할아버지한테까지 똑같이 할까봐 늘 곁에서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과 상관 없이 나는 내 방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정말로 그랬다. 할아버지의 삽질 소리 같은건 나중에는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나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있으나마나한 소리가 되었기 때문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가 싫다며 매일같이 악을 쓰는 동생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내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면 할아버지가 왜 아르헨티나로 가려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머릿속에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여러가지 추측들이었다. 아버지의 말도, 작은 할머니의 말도 어딘지 백 퍼센트 신뢰를 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아르헨티나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탱고? 마라도나? 경제 위기?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능한한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르헨티나라는 얘기다. 나는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보려고 땅을 파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작은 할머니의 얘기보다 훨씬 더 그럴싸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 하나로도 충분했다. 

 

Chapter 7


 

 아버지의 휴가는 일주일로 끝났다. 그 다음부터는 어쩔 수가 없었다. 지난 날 할아버지가 침착하게 찬장에서 신경안정제와 주사기를 찾아내던 것을 생각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약을 꺼내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버지는 결코 할아버지를 혼자 두려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나에게 가짜로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사흘쯤 집에서 할아버지를 지켜보라고 말했다. 그건 좀 당황스러웠다.

  "저, 이제 중학생이에요…."

  아버지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런 얘기는 머리털나고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마 정말로 그랬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나 대신 동생이 대신 체험학습 신청서를 가짜로 내고 학교를 빠지게 되었다. 동생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동안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많이 걱정을 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면 저 서랍장 위에, 작은 통에 있는 알약을 딱 두

개, 할아버지 입에 넣어드리면 돼."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선심을 쓰는 듯한 말투였다. 그건 동생에게는 정말로 크나큰 선심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싫어하는 소리와 함께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소리를 내는 장본인의 목숨을 살려주기까지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생은 집에서 별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집에 두고 혼자 어디론가 놀러 나가기 일쑤였다. 그걸 안 아버지는 동생에게 무척이나 조심해서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혼자 두면 안돼. 언제 쓰러지실지 모른다니까."

  동생은 집에 붙어있게 되자 역시 그 삽질 소리를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동생은 할아버지에게서 삽을 빼앗아 창 밖으로 던져버렸다. 할아버지는 삽을 찾으려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고, 그 사이에 동생은 집 문을 잠궈버렸다. 잠시 후 삽을 되찾아온 할아버지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동생은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는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밖에서 쭈그려 앉아 계셔야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는 동생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훨씬 더 화가 나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달겨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동생을 조심해서 다루지 않았다. 동생을 힘으로 제압해서는 옷장 안에 가두어버린 것이었다. 동생은 문을 두드리며 옷장을 부수려 했지만 아버지가 부지깽이 같은 것을 문에 걸어놓는 바람에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동생은 자정이 남도록 지치지도 않고 옷장 안에서 괴성을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그 날은 할아버지의 삽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공포에 떨며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작은 할머니를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작은 할머니는 여전히 동생을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옷장 안에 동생을 가두어놨다고 하는데도 작은 할머니는 돌아오려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직접 외갓집으로 찾아가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라며 제발 돌아와서 할아버지를 돌봐달라고 애걸했다. 사람 생명이 달려있다는데야 어머니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상당히 오랜만에 우리 집에 돌아오게 되었고 나는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반갑게 맞이하든 말든 그런 문제보다는 동생이 옷장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애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에요?"

  아버지는 동생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화를 내며 설명했지만 어머니는 듣지도 않고 옷장 문을 열었다. 동생은 거품을 물고 기절해있었다. 흘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액체로 범벅이 된 동생의 모습은 그 애가 옷장 안에서 겪었을 공포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왔으니 동생도 다시 학교에 나가야했다. 하지만 동생은 옷장에 갇힌 일 때문에 심각한 열병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한 동안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체험학습을 갔다가 감기에 걸렸다는 설명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없었다. 동생은 병이 다 나은 듯 거실에 서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어디에 갔는지 물었다.

  "시장 갔어."

  그리고 나는 다른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삽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엌으로 들어가보니 할아버지가 없었다. 나는 먼저 서랍장 위를 확인했다. 약병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할아버지가 파놓은 구덩이로 다가갔다. 이제는 거의 할아버지의 허리까지 오는 구덩이. 아르헨티나로 가는 구덩이. 그 구덩이 안에 할아버지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굳은 채 누워있었다. 

 

Chapter 8


 

 어머니는 나를 낳았을 때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동생을 낳았다. 무려 스물 두 시간의 난산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아기가 왜 그렇게 안나오는지 의사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둘째이기 때문에 아기가 나오는 통로가 좁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기나 산모가 힘을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기는 엄마에 뱃속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심지어 왔던 길로 다시 물러나기까지 했다. 그건 누가 봐도 일부러 안 나오는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긴 사투 끝에 밖으로 나온 아기는 한이 서린 목소리로 분만실을 쩌렁쩌렁 울릴만큼 크게 울었다. 마치 기어코 자기를 이 세상에 끌어낸 인간의 무리들에게 분개하며 터뜨리는 울음 같았다.

  동생은 아무 일도 없으면서 공연히 울어 어머니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가지고 놀던 블록 조각이나 크레파스 따위를 집어들어 가족들의 발목을 주로 찔러댔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동생이 뒤쪽으로 기어와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할지 몰라 은근히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그런 동생을 혼내곤 했지만 그 때마다 동생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터뜨렸던 것과 같은 엄청난 울음으로 어머니를 질리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동생이 좀 사나운 아기라고 생각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모든 행동이 더 심해졌지만, 단지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생이 보여준 행동들은 명백히 문제가 있었다. 동생 때문에 실명을 할 뻔한 아이도 있었고, 이가 하나 나간 아이도 있었으며(다행히 그 이는 어차피 곧 빠질 이였다), 팔꿈치 살점이 떨어져나간 아이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동생을 아동정신과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뭐든지 이름을 붙이기 좋아하는 의사들도 내 동생에게 어떤 병명을 붙여줘야할지는 알지 못했다. 대충 몇가지 의학적인 단어들을 조합해내서 말하기는 했지만 순 돌팔이 같은 이름이었다.

  정신과 치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동생이 계속 의사에게 욕을 하는 바람에 결국 병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교육으로 얼마든지 동생의 성격을 개선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어느 날 동생이 성냥으로 장난을 하다가 테이블보에 불을 질러버리자 어머니는 간신히 불을 끄고 동생을 꾸짖었다. 그러자 동생은 어머니에게 불을 놓으려고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의해 간신히 화상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그래도 화를 억누르지 못했고 자기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나긴 소동을 벌였다. 그 때 우리는 귀여운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웠는데 그 날 이후로는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신경안정제와 주사기를 사다가 찬장 안에 두었지만 가족들이 워낙 알아서 조심하는 바람에 그것을 쓸 일이 없었다. 훗날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할머니가 나타나 실수를 범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혼나거나 매를 맞아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동생의 몫까지 혼나고 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특히 나의 언행을 가지고 자주 화를 내셨다. 할아버지에게 냄새가 난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실컷 두드려맞은 이후,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모두에게 충분한 예의를 갖추어 행동을 했고 절대 조심성을 잃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충분히 결론을 내린 다음에 하는 말이나, 아무 의미 없이 하는 말까지도 혼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일가친척들은 내가 '조용한 아이'라고 했다. 그게 싫은건 아이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의 이면도 봐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내가 이면이라고 생각했던건 어디까지나 나의 속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줄리가 없었다.

  오히려 나를 잘 이해해준건 동생 쪽이었다. 그 애는 내가 가끔씩 생각만하고 말하지 않는 것들을 귀신같이 알아내 먼저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는 왜 그걸 말하지 않느냐며 나를 바보 취급했다. 가끔은 동생이 오히려 나보다 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오빠 노릇 같은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아이도 나를 오빠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동생이 좋은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빈 약병을 찾아냈다. 아마 알약은 변기물을 타고 내려간지 오래일 터였다. 연락을 받고 집에 일찍 돌아온 아버지는 구덩이 속에 누운 할아버지를 한참 동안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곁에 서있던 어머니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어머니는 화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놀란 것도 아닌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아버지는 동생을 찾으려했다. 동생은 문을 잠그고 방에 숨어있었지만 아버지가 온몸으로 들이받자 방문이 떨어져나갔다. 동생은 놀랍게도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손발을 모두 사용해 미친 사람처럼 동생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겁에 질려 울부짖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잘못을 빌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동생을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맞던 동생은 온몸을 던져 간신히 아버지를 자빠트리고는 얼른 방을 빠져나와 신발도 신지 않고 집을 뛰쳐나갔다. 아버지는 자빠진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덩달아 짐승처럼 울었다. 나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동생을 보지 못했다. 

 

Chapter 9


 

 동생이 떠나고 할아버지가 떠나간 다음에는 어머니도 떠나갔다. 이번에는 완전한 이혼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할머니를 부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르헨티나로 가려했던 이유를 끝내 알아내지 못한게 속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결국 끝까지 할아버지가 마라도나 사인볼을 받으려고 땅을 팠었던거라고 생각하실테니 말이다. 우리 가족의 구성원 중 세 명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사태에 대해 같은 반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자세하게 설명해주려 하지 않았다. 설명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아버지는 도저히 회사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나 역시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순식간에 무능한 사원이 되었고 나는 학습부진아가 되었다. 아버지도 나도 서로를 탓할 입장이 못되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파놓은 구덩이를 이어서 파기 시작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잠결에 어디선가 삽으로 흙을 파내고 있는 소리를 들었고 동시에 할아버지의 유령이 오래된 삽을 들고 구덩이를 파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눈을 부비며 나와보니 구덩이를 파고 있는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시체를 파묻다가 들킨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렇게까지 뜨끔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도대체 왜 그걸 이어서 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고 해서 내가 그 구덩이를 계속 이어서 팔 마음 같은건 없었다.

  그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하던 것처럼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삽질만 했다. 확실히 할아버지보다 일의 진전이 훨씬 빨랐다. 하지만 분명히 더 많이 팠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허리까지 들어갈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 못지 않게 키가 작았다. 왜 하필 마라도나를 좋아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한텐 정말 무서운 분이었지. 하지만 끝까지 나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어. 원해서 낳은 자식도 아니었으니까."

  아버지는 구덩이를 파면서 혼잣말을 했다. 나는 잠시 후에야 나한테 얘기하는 중이라는걸 알았다.

  "그래도 난 우리 아버지를 사랑해. 할 수 있는건 다 해드렸어."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부엌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동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무렵 나는 동생의 방에서 노는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동생이 그린 그림이나 일기 같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림이고 일기고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딘지 모르게 계속 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동생이 집을 나가서 안 돌아온다는 사실에 대해 슬프기는 했지만 눈물이 나지를 않아서 어쩐지 죄책감이 들던 차였다. 그래서 동생의 일기 같은 것들을 보다가 감동적인 구절이라도 한 두줄쯤 발견해서 그걸로 눈물을 흘려보려는 속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기는 감동은 커녕 괴상하기만 했다. 특히 그림일기의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섬뜩한 느낌을 줘서 오히려 동생이 집을 나가면서 생긴 바람직한 점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위해 울기를 포기하고, 그 아이가 어디에선가 잘 살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동생의 침대에서 일어나 전신거울 앞에 서보았다. 그곳에 열 세 살 소년이 있었다. 사실 생일이 안 지났으니까 정확하게는 열 두 살이었다. 나는 한참 거울을 보다가 문득 중얼거려보았다.

  "그래도 난 우리 아버지를 사랑해."

  나중에 나의 아들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hapter 10


 

 결국 우리 꼴을 보다못한 작은 할머니가 먼저 나서서 우리 집에 와주셨다. 구덩이를 파고 있는 아버지를 본 작은 할머니는 경악을 하며 삽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집 밖 멀리에다 내다버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달리 그것을 되찾아오려 하지는 않았다. 작은 할머니는 밀린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그 동안 못 먹어본 맛있는 밥도 해주었다. 나는 좋았지만 아버지는 작은 할머니가 나타난게 어딘지 못마땅한 것처럼 보였다. 작은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떠나간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동생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경찰에 신고를 해서 찾아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작은 할머니는 집에 재료가 아무것도 없어서 더 이상 맛있는걸 만들라야 만들수가 없다며 시장을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작은 할머니를 따라서 시장으로 갔다. 내가 원해서 따라나서긴 했지만 혹시라도 시장에서 같은 반 아이를 만날까 주위를 살펴보았다. 할머니와 같이 장을 보러 나온 모습을 별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같은 반 아이를 만난다면 그 아이도 역시 마찬가지로 어머니나 누구를 따라서 장을 보러 나온 것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은 할머니의 장바구니도 들어주고 카트도 밀어주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 쯤에는 기분이 좋아져서 작은 할머니에게 쓸데없는 질문까지 했다.

  "할머니가 정말로 작은 할아버지를 죽였어요?"

  작은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지."

  작은 할머니는 감자 봉지를 든 손으로 코를 문질렀다.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왜요?"

  "그러면 너무 많은게 잘못되어 버리니까."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때 작은 할머니가 했던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고민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순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작은 할머니의 허락을 맡아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웠다. 더 이상 강아지를 죽일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아지는 2년 뒤에 알아서 죽었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는 사람을 불러서 메워버렸다. 그 사람이 구덩이를 보더니 물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게 생겼습니까?"

  작은 할머니는 그저 누가 파놓고 갔다고만 말해주었다. 


-끝-





오 용 택
베이시스트, 작가

1992년생. 밴드 '차세대'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다.
가사를 쓰고 소설이나 수필도 가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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