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올 한 해 자기만족도에 따른 음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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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자기만족도에 따른 음악 추천






  때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자정이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기에 어느 해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TV에서는 그 현장을 중계해주었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달력 한 장 넘기는 거 가지고 왜 저렇게 난리들이람. 사실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1999니, 2000이니 해도 따지고 보면 그냥 한 해가 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반면 나는 여태까지도 살아남아서 달력을 넘기고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더 흘러서 2020년이 되었다. 1년전 까지만 해도 SF 영화에나 나올 것만 같아 믿을 수가 없던 숫자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던가 모든 가정에 보급된 홀로그램 인공지능 같은 건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질병이 차지했고,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혀 나오기를 싫어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간 한 해였다.

  그렇다면, 연말 기분이나 낼 겸 음악이라도 곁들여보자. 하지만 한 해가 넘어가는 지금, 모두의 기분이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맞춤형으로 곡을 추천해드리고자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당신이 보낸 2020년 한 해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도를 매기되, 0%, 30%, 50%, 80% 100%의 다섯 가지 기준 중 택일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해당하는 추천곡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


 


만족도 0%를 위한 추천곡 – 자우림의 <샤이닝>



 

  0%를 선택한 당신은 2020년 한 해 동안 모든 걸 더욱 최악으로 몰아넣었을 뿐, 잘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물론 생각은 한 번 해볼 수 있다. 정말 단 하나도 없었을까? 그러나 어차피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다. 어쨌든 당신은 스스로 최악의 한 해였다고 생각하고, 조금의 만족감도 없다. 그건 누가 와서 바꿔줄 수도 없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이처럼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면, 사람들의 어설픈 위로 공세에 시달려야 할 수도 있다. 사실 사람들이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보지 못하는 당신의 장점을 얘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의 이런 다정함은 당신에게 충분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30%도 아닌 0%를 골랐을 정도라면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뭣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더욱 높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2020년은 최악이었고, 솔직히 다가올 2021년도 더 개판을 치면 쳤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은데, 그리고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힘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런 당신을 위해 자우림의 <샤이닝>을 추천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이유도, 끝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의지할 곳 하나 찾지 못하고 있다. 모르긴 모르지만, 닮은꼴을 찾기 어려운 당신의 마음과 그나마 흡사하지 않을까 싶다. 힘든 게 당신 하나뿐만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의 아픔이 타인이랑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당신보다 힘든 사람이 지천에 널렸다고 하더라도 당신 스스로가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아픔은 느껴볼 수도 없고, 그래야할 이유도 없으니까. 어차피 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 노래는 당신에게 위로가 되는 대신, 당신이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가라앉지 말라고 당신을 자꾸 끌어 올린다. 운동이 됐든 뭐가 됐든 뭐라도 좀 하면서 기운을 내라고 당신을 응원해 주곤 한다. 분명 틀린 말도 아니고, 당신을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란 것도 아는데 왜 그렇게 고깝게 들릴까? 사실 그들이 당신과 함께 가라앉아 줄 마음은 없다는 걸, 당신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자꾸 당신을 끌어올려주려고만 하지, 당신이 있는 밑바닥에서 같이 뒹굴어 줄 용기는 없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도무지 와 닿지를 않는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들도 나름의 인생이 있으니까. 대신 이 노래를 동반자로 삼아보자. 이 노래의 우울한 멜로디와 절망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가사를 음미하면서, 함께 가라앉아보자. 아마 당신의 2021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우울해 할 수는 있다. 당신의 마음 중에서도 가장 기괴하고 깊은 곳을 열심히 살펴보면서 스스로 무덤덤해지자. 그러면 2022년쯤에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만족도 30%를 위한 추천곡 – Iggy Pop의 <Lust For Life>

 



  30%를 선택한 당신. 전체적으로는 올 한 해를 망쳤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0%와의 가장 큰 차이는, 망친 부분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소화해낼 힘은 있다는 점이다. 

  그런 당신에게 이기 팝의 <Lust For Life>를 추천한다. 이 영화가 OST로 쓰였던 영화 <트레인스포팅>과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펑크 락’은 이미 어딘가가 좀 망쳐져 있는 음악이나 다름없다. 유려한 멜로디와 짜임새 있는 편곡, 뛰어난 연주로 점철된 웰메이드 음악과는 반대편에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구성과 주절거리는 듯한 멜로디, 막 써갈긴 것 같은 가사는 정통 펑크의 상징과도 같다. 망쳐버리는 것도 어떻게 망쳐버리느냐에 따라서는 오히려 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영화 <트레인스포팅>도 마찬가지다. 정말 갑갑하고 암울한 청춘들만 골라서 등장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그들이 멋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 도입부부터 내달리는 <Lust For Life>는 그러한 등장인물들의 테마곡이 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좀 엉망진창이면 어떤가. 당신에게는 30%의 자랑거리가 있다. 그걸 부풀리고 부풀려서 나머지 70%의 흠 따위는 덮어버리면 된다. 그건 정신승리일 뿐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당장 내년부터 환골탈태할 수 있는 초인이 아니라면 정신승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충분히 멋지게 살고 있다고 본인 스스로부터 속여 버리자. 그래야 남들도 속일 수 있고, 나아가서는 그게 허세가 아닌 진짜가 될 수 있다.


 

만족도 50%를 위한 추천곡 – Queen의 <Spread Your Wings>



  

  50%를 선택한 당신은 올 한 해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컸다고는 딱히 이야기할 수 없는, 그냥 그런 한 해였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의 만족도가 50%라는 점이 아니다. 어차피 그 수치는 정확하게 잴 수도 없는 것이기에, 오히려 중요한 건 당신이 50%를 선택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부정적인 마음이 조금 더 당신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30%를 택했을 수도 있고, 긍정적인 마음이 더 컸다면 80%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 둘 사이에서 완벽하게 균형을 맞춘 상태로 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50%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사실 2020년이 당신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한 해였던 건 아닐까?

  타성에 젖은 무료함이란 무언가가 잘되어가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아마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빴다면, 아마 당신은 타성에 젖을 시간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 한 해 당신이 지내온 나날들은 썩 나쁘지 않았고, 그렇다고 뭐가 대단히 괜찮았던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면 한 번 더 도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퀸의 <Spread Your Wings>를 추천한다. 가사에 등장하는 새미는 무언가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냥 바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새미에게 상사는 “헛된 꿈꾸지 말고 지금에 만족하라”고 말하고, 후렴의 노래는 새미에게 ‘날개를 펴고 날아보라’며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진부한 비유가 섞인 응원이라 해도,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면 어쩐지 다르게 느껴진다. 

  만약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안정감은 줄지라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곳이 과연 새미가 일하는 바(Bar)와 무엇이 다를까. 앞이 낭떠러지라고 생각될 때, 한 발을 더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추락한다고 생각되는 순간, 보이지 않던 길이 당신의 발끝에 닿을 것이다.


 

만족도 80%를 위한 추천곡 – 이상은의 <둥글게>

 




  80%를 선택한 당신은 완벽에 가까운 한 해를 보냈다. 물론 몇 가지 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상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시하자면, 과연 당신이 놓친 20%는 무엇이었을까?

  뭔진 몰라도 아마 당신에게 있어서 1, 2위를 다툴만큼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중요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은 거라면 아마 50%, 혹은 30%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당신에게는 아쉬운 부분들보다 만족스러운 부분들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던 한 해였을 것이다.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당신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부분들도 한 번 돌아보는 게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이상은이 부른 <둥글게>를 추천한다. 가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람들과 자주 모였던 작은 가게가 문을 닫자 눈물을 보이고, 화자는 그런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사람이 얘가 아닐까’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마 그 가게는 당신이 2020년에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던 아주 작은 가게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걸 다 챙기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신이 잠시 눈을 돌려, 그 동안 소홀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챙긴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의 몸은 하나뿐이고 시간은 한정적인 와중에, 삶은 저울과 같아서 그만큼 또 다른 것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쪽만 챙기다 보면 저울은 점점 더 기울어지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저울의 양쪽 끝을 둘 다 올릴 수도 없고 완전한 수평을 이루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왼쪽과 오른쪽이 번갈아가면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게라도 해주면 어떨까. 2021년에는 저울의 반대편을 한 번 신경써보는 것도 좋겠다.



만족도 100%를 위한 추천곡 – The Rolling Stones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계속 이야기했듯이 당신이 고른 수치는 누군가가 당신의 올 한 해를 평가해서 객관적으로 매겨준 수치가 아니다. 그냥 당신 마음의 만족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100%를 골랐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이라 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말해보겠다. 당신은 거짓말을 했다. 만족도 100%의 한 해 같은 건, 살면서 겪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100%라고 답했을까. 그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올 한 해가 그만큼 완벽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감은 아주 중요하다. 당신이 매년 이렇게 바람직한 자기 최면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의 당신이 걱정스럽다.

  악담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거짓말로라도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는 최악의 한 해가 언젠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이미 있었다면 갱신될 것이다. 스스로 100% 만족한다고 말하며 살아온 당신은, 거짓말조차 통하지 않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남들보다 더 빨리 무너질지도 모른다. 왜냐면 당신은 그 동안 남들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까지 잘 속여 왔으니까.

  그래서 롤링 스톤즈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를 추천한다. 이 노래 제목 그대로, 당신은 언제나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당신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다. 그건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허점을 보이는 일이 조금씩 더 익숙해지길 바란다. 물론 일부러 자기 단점을 꺼내서 자랑하고 다닐 이유는 없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굳건하게 당신을 응원하며,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보다 편한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해보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랬겠지만, 그냥 재미로 읽어주었길 바란다. 내 코가 석자인데 당신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내가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바라는 이야기들만 적어보았다. 그렇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나 스스로한테 하는 얘기다. 글을 다 쓰고 난 뒤 나의 만족도를 평가하여 해당 항목을 보니, 뭐 스스로한테도 얼추 맞는 얘기인 것 같다.

  다시 새천년이 되던 그 날의 자정으로 돌아가 본다. 무려 20년 전 이야기다. 까마득하다. 20년 동안 나도, 당신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어쩌면 당신은 태어나지도 않은 때였을지도 모른다. 달력 한 장 넘기는 거 가지고 왜 저렇게 난리들이람. 아버지가 어떤 말투와 목소리로 그렇게 얘기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도무지 기억해낼 자신이 없어서 다시 2020년으로 돌아온다.

  어쨌든 당신과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한 달 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는다면 2021년까지 무사히 함께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보신각까지 나가 종 치는걸 보고 새해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쳐도 부족할 정도로 축하할 일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내년은 더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열심히 꿈을 꾸고, 내년 연말에 또 고배를 마시자.

  새해 복 많이 받기를.  

   




오 용 택
베이시스트, 작가

1992년생. 밴드 '차세대'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다.
가사를 쓰고 소설이나 수필도 가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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