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오용택의 단편소설 '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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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데리'


(음악이 자동재생되는 콘텐츠입니다. 이어폰을 끼고 콘텐츠를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성은 (28세, 여)
데리 (14세, 남)



#1

데리가 학교 도서관에 앉아 CDP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 잠시 후 다급하게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성은. 데리를 발견하더니 그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온다. 데리는 그녀가 바로 곁에 올 때까지도 알지 못한다. 성은이 데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데리는 그제야 놀라서 올려다보며 이어폰을 뺀다.

[성은]  데리 맞니?
[두리]  맞는데, 누구세요?

성은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데리의 맞은편에 앉는다. 데리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성은이 데리를 한참동안 빤히 보다가 말한다.

[성은]  아무리 꿈이지만,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어. 근데 더 신기한 건, 한 번에 알아보겠는거 있지.
[데리]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

[성은]  너 중학생이니?
[데리]  네. 올해로 중학교 1학년이에요.
[성은]  어렸을 적으로 돌아온거구나. 사람 나이로 치면 그렇게 되네.

...

[성은]  그건 아니겠구나. 어차피 내 꿈이니까.
[데리]  꿈이요?
[성은]  응. 미안해.
[데리]  아뇨, 그건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다면 제가 왜 당신 꿈 속에 있는 거에요?
[성은]  쪼끄만게 당신이 뭐야?
[데리]  그럼 뭐라고 불러요?
[성은]  누나라고 불러야지.

...

[데리]  그건 싫어요.
[성은]  왜?
[데리]  그냥 싫어요.
[성은]  하긴... (생각해본다) 사람 나이로 치면 원래부터 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어.
[데리]  아까부터 자꾸 사람 나이로 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

[성은]  너 네가 개인건 아니?
[데리]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성은]  왜 하필 사람으로 나타났을까?
[데리]  저한테 물어보셔도 소용 없어요. 어차피 당신 꿈 속이라면서요? 그럼 저를 이런 모습으로 불러낸 이유가 있겠죠.

...

[성은]  그래, 난 너랑 얘기가 하고 싶었어. 항상 그랬던 것 같아.
[데리]  혹시 제 주인이셨어요?
[성은]  맞아.
[데리]  지금도 키우고 있나요?
[성은]  아니, 지금은 아니야.
[데리]  저 죽었어요?
[성은]  아니.

...

[데리]  그럼 절 버렸어요?
[성은]  응.
[데리]  왜 그랬어요?

...

[성은]  뭐 읽니?
[데리]  (책을 들어보이며) 톰소여의 모험이요. 왜 저를 버린 거에요?
[성은]  네가 날 물었어.
[데리]  그렇다고 버려요?
[성은]  많이 세게 물었어.

...

[데리]  피났어요?
[성은]  피만 난 정도가 아니지.
[데리]  미안해요.
[성은]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야.

...

[성은]  왜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어?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지.
[데리]  저는 이러고 있는게 좋아요.

성은이 데리의 CDP를 열어본다. 해외 음반이 걸려있다.

[성은]  너는 중 1짜리가 뭐 이런걸 들어? 애들처럼 가요도 듣고 그래.
[데리]  왜 자꾸 잔소리 해요?
[성은]  애면 애답게 좀 굴어봐. 이러니까 나중에 성격이 이상해지지.
[데리]  저 이상해져요?
[성은]  응. 많이.

...

[데리]  사실 지금도 그런 소리는 들어요.
[성은]  그래. 그게 다 친구들이랑 안 놀고 이러고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거야.
[데리]  상관 없어요. 그게 다 무슨 상관이에요?

...

[성은]  네 말이 맞아. 미안해. 사실 나도 그래서 너를 데려왔었어.

...

[성은]  처음에는 누군가를 데려오려고 거기 간게 아니었어. 그냥 구경 간거였는데. 많은 아이들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짖고 뛰기 시작했어. 그 중에 너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지.
[데리]  저랑 눈이 마주쳤나요?
[성은]  아니. 너는 나를 잘 보지도 못했어. 하지만 분명히 온 몸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누구보다도 나한테 선택받고 싶어한 아이가 너였을 거야. 나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너를 데려왔어.
[데리]  저한테는 얼마나 더 나중의 일이죠?
[성은]  숫자로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더 많이 기다려야 할거야. 그 때 이미 너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었거든.

...

[데리]  저는 아무도 물지 않아요.
[성은]  나도 그럴 줄 알았어.
[데리]  왜 물었나요, 제가?
[성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잠깐의 정적. 데리가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성은]  왜 그래?
[데리]  저는 좋은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성은]  좋은 어른이야. 충분히 좋은 어른이었어. 그러니까 내가 너를 데려간거지.
[데리]  그렇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아무도 안 데려갔다는 거잖아요.
[성은]  맞아. 사람들이 네 매력을 잘 모르니까. 애교도 없고, 붙임성도 없고. 그런데 나는 네가 그래서 좋았던 거야.
[데리]  그러면 뭐해요? 결국 버렸다면서.

...

[성은]  생각해보면, 아직 너한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잖아. 그렇지?

데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성은]  그럼 너한텐 아직 기회가 있는거야. 이번엔 나를 물지 마.
[데리]  다시 저를 분양받으러 올거에요?
[성은]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잘 모르겠지만, 지금 너랑 같은 때에 살고 있는 나는 어차피 따로 있는게 아닐까? 그럼 걔가 결정하는 거겠지.
[데리]  이번엔 좀 더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성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

[성은]  아냐. 너도 굳이 나를 기다릴 필요는 없겠구나. 다른 좋은 주인이 먼저 나타날 수도 있잖아.
[데리]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요?
[성은]  뭐가?
[데리]  제가 기다리길 바래요?
[성은]  그건 네 마음이지. 아니, 솔직히 안 기다렸으면 좋겠어.
[데리]  이미 제 운명을 알았는데, 어떻게 안 기다릴까요?
[성은]  내가 나타나지 말았어야 하는걸까.
[데리]  아뇨. 어차피 다 꿈이잖아요. 저는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어요. 어차피 꿈 속의 저는 당신이에요.

정적. 데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성은]  배고프니?





S#2

성은과 데리가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고 있다.

[성은]  장소까지 옮겼잖아. 이렇게 긴 꿈은 처음이야.
[데리]  꿈이라는 얘기 그만해요. 제가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기분이에요.
[성은]  꿈에서까지 피자를 먹네.
[데리]  꿈 얘기 그만 하라니까요.
[성은]  미안. 어제도 실제로 피자 먹었거든.

...

[성은]  그저께도 먹고.
[데리]  왜 피자만 먹어요?
[성은]  피자를 좋아하니까.
[데리]  좋아한다고 한 가지만 계속 먹어요?
[성은]  나는 그래. 그러다가 곧 안 좋아하게 되고.
[데리]  저를 키울 때는 좋았나요?
[성은]  어려웠지만 행복했어.
[데리]  피자처럼 매일매일 좋았어요?
[성은]  피자보다 좋았지.
[데리]  그러다가 곧 안 좋아하게 되는 거죠?

...

[성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안 질려. 피자는 원래부터 그 정도는 아니었어.
[데리]  진짜 좋아하는 건 뭔데요?
[성은]  말하기는 어려워. 하지만 많진 않아.

...

[데리]  제가 미안하다고 하면 다시 집으로 들여보내 줄건가요?
[성은]  이미 미안하다고 했잖아.
[데리]  이건 제가 아니잖아요. 당신이 꿈에서 깨고 나서, 진짜 제가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한다면요.

성은은 고개를 젓는다.

[성은]  진짜 너는 어차피 말을 못해.

...

[성은]  그러니까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 다 해둬.
[데리]  말은 못해도, 집으로 돌아오는 것 자체가 사과의 표시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성은]  못 찾을 거야. 먼 곳에 버렸거든.
[데리]  얼마나 멀리요?
[성은]  아주 멀리. 그리고 너도 내가 미워서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거야.
[데리]  제가 먼저 물었다면서요? 저 그렇게 사리분별 못하는 개는 아닐거에요.
[성은]  물론 처음엔 미안하겠지. 하지만 밖에서 비 맞고 눈 맞으면서, 며칠 굶다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미안함은 사라지고, 너를 이렇게 만든 내가 오히려 미워지기 시작할거야.

...

[데리]  다른 방법도 있었잖아요.
[성은]  없었어. 내가 품고 살기에는 너무 위험했고, 그걸 알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었으니까.
[데리]  이미 죽은 거 아닐까요?
[성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

[성은]  잘 살아줘.
[데리]  버려놓고서 할 말은 아니네요.
[성은]  너도 나한테 똑같이 말해줘.
[데리]  뭘요?
[성은]  잘 살라고.

...

[데리]  잘 사세요. 저는 다른 당신을 기다릴 거에요.
[성은]  무슨 말이야?
[데리]  당신이 있는 세상에서는 끝난 일이겠죠. 하지만 저한테는 이제 시작이잖아요. 기쁜 일들만 남은거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미리 알았고.
[성은]  그치만...
[데리]  꿈 얘기라면 걱정 마세요. 여기에도 여기 나름의 세상이 있겠죠. 당신이 깬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닐거에요.

...

[데리]  궁금한 게 있어요.
[성은]  뭔데?
[데리]  왜 저를 보고싶어 한거에요?
[성은]  내가?
[데리]  보고싶으니까 제가 꿈에 나온거잖아요.
[성은]  그냥, 어렸을 때의 너는 어땠을지 항상 궁금했거든.
[데리]  그게 다에요?
[성은]  응.
[데리]  그래서, 보니까 어때요?
[성은]  상상했던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데리]  하지만 당신이 상상한건 강아지의 모습이잖아요.

...

[성은]  맞아.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아.

계속해서 피자를 먹는 두 사람.





S#3

성은과 데리가 어느 공원에 도착한다.

[데리]  여긴 어디에요?
[성은]  너랑 꼭 와보고 싶었던 공원이야.
[데리]  결국 안 왔나보네요.
[성은]  멀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거든.
[데리]  왜 오고 싶었는데요?
[성은]  넓어서 뛰어놀기 좋을 것 같아.
[데리]  제가요? 아니면 당신이?
[성은]  둘 다.

...

[성은]  한 번 뛰어볼래?
[데리]  네?
[성은]  여기서부터 저기 끝에 있는 저 나무까지, 한 번 뛰어갔다 와주면 안 돼?
[데리]  왜요?
[성은]  그냥 보고 싶어서.

데리는 쪼그려 앉아서 신발끈을 고쳐맨다.

[데리]  저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줘요.
[성은]  어떻게?
[데리]  어차피 당신 꿈이잖아요. 저를 중학생 남자아이로 만든 것도 당신이니까, 다시 개로 만들 수도 있을 거에요. 이왕이면 원래 모습으로 뛰는걸 보는게 좋잖아요?
[성은]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데리]  글쎄요. 정신을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요.
[성은]  그러다 깨면 어떡해?

데리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데리]  그럼 그만둬요. 그냥 뛸게요.
[성은]  고마워.
[데리]  제가 원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나요?
[성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지.

데리가 100m 쯤 떨어진 나무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뜀박질 소리만 서서히 멀어진다. 데리가 멀리서 나무를 찍고, 다시 성은을 향해 뛰어온다. 뜀박질 소리도 점점 가까워진다. 성은의 앞에 멈춰서 숨을 몰아쉬는 데리.

[데리]  헥... 헥... 됐죠?

성은이 아무 말 없이 데리를 안아준다.

[성은]  고마워.

...

[데리]  또 가고 싶었던 데 없어요?
[성은]  많지. 어차피 다 못 가.

...

순간 어디선가 트럭 한 대가 나타난다. 데리는 트럭을 향해 몸을 날린다. 트럭에 치여 날아가는 데리. 데굴데굴 굴러가서 대자로 눕는다. 별로 아프지도 않아 보인다. 트럭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고, 성은은 누워있는 데리에게 다가간다.

[성은]  그러지 마.
[데리]  차라리 저를 죽여요.
[성은]  너 안 죽어. 방금 해봐서 알잖아.
[데리]  진짜로 제가 왜 당신을 물었는지 몰라요?
[성은]  몰라.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데리는 누운채로 하늘만 보고 있다.





S#4

성은과 데리가 길을 걷고 있다.

[성은]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야.
[데리]  꿈 속에서 어떻게 시간을 짐작해요?
[성은]  아마 그럴거야. 몸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곧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거든.

...

[데리]  다시 데리러 와주면 안 돼요?
[성은]  꿈에 다시 나오게 해달라고?
[데리]  아뇨. 저를 어디 버렸는지 당신은 기억하잖아요. 제가 찾아갈 수 없다면, 당신이 다시 데리러 와줄 수 없나요?
[성은]  네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겠어? 이미 어딘가로 갔겠지.
[데리]  그래도 그 근처에는 있겠죠.
[성은]  안 돼.

걸음을 멈추는 성은. 데리도 따라서 멈춘다.

[성은]  나는 데리러 못 가. 오고 싶으면 네가 와.
[데리]  먼 데다가 버렸다면서요.
[성은]  그래서 아마 못 찾아 올거야. 운이 좋으면 헤매고 헤매다가 몇 년만에 찾을 수도 있지.
[데리]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으라는 소린가요?
[성은]  아니. 네가 그렇게까지 해서 찾아오면 내가 믿을 수 있을지도 몰라.
[데리]  뭘요?
[성은]  나한테 미안해한다는 거.
[데리]  꼭 그렇게까지 해야 믿는 거에요? 제 마음으로는 소용이 없나요?
[성은]  소용이 없어졌어. 그래서 버린 거야.

둘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데리]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다시 키워주겠다는 말은 아니죠?
[성은]  모르지. 그 때 나는 어떤 사람일지.
[데리]  확신이라도 있어야 제가 남은 시간을 돌아가기 위해서 다 바칠 수 있죠.
[성은]  확신이 없으면? 다른 주인 찾아가게?

...

[데리]  아뇨.

...

[데리]  그러네요. 어차피 갈 곳은 한 군데 밖에 없네요.
[성은]  나는 다른 주인 찾아가라고 물어본거야.
[데리]  아까도 말했잖아요. 이미 제 운명을 알았는데 어떻게 해요?
[성은]  운명이 어딨어? 그렇게 너무 좁은 눈으로 보지 마.
[데리]  가장 멀리까지 보고 하는 말이에요.

...

[성은]  그렇게 돌아와서 또 물려고?
[데리]  제 이빨을 다 뽑아버리는 건 어때요?
[성은]  내가 그런 짓까지 하면서 너를 키워야겠니?

...

[성은]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너랑 상관 없는 얘기잖아? 그렇게 내가 좋으면, 너는 네 세상에서 다른 나를 찾아.
[데리]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저는 애초부터 없는 존재라는 거 알아요. 실제로 존재하는 건 당신이 버리고 온 그 개 하나 뿐이에요.

...

[성은]  그러니까 왜 그랬어? 조금만 참았으면 됐잖아.

...

[데리]  개잖아요.

...

[데리]  깨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고 싶어요.
[성은]  뭘?
[데리]  우리 같이 지내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성은]  그걸 어떻게 봐?
[데리]  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에요. 마음만 먹으면, 영사기를 만들어서 화면을 띄울 수도 있는 거라구요.
[성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데리]  한 번 해봐요. 저를 위해서.





S#5

성은의 집. 데리가 신기한 듯이 집안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한구석에 있는 개밥그릇을 발견하고 묻는다.

[데리]  저거 제가 쓰던 밥그릇이에요?
[성은]  실제로는 진작에 치웠어. 여기에만 있는거야.

계속해서 집을 둘러보는 데리. 성은이 방 안에서 데리를 부른다.

[성은]  이리 들어와봐.

안으로 들어가는 데리. 불꺼진 방 안에서 성은이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흰 벽에 프레임이 나타난다.

[데리]  성공했나봐요.
[성은]  깰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버리니까, 오히려 쉬운걸.
[데리]  그럼 껌도 하나만 만들어줄래요?

데리의 손에 어느새 하얗고 커다란 개껌이 들려져있다. 성은의 옆에 앉아서 개껌을 씹기 시작하는 데리.

[성은]  준비 됐어?
[데리]  네.

벽에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펫샵에 간 성은의 시점. 저마다 케이지 안에서 짖어대며 날뛰는 강아지들. 그러나 성은의 눈은 그런 강아지들을 모두 지나쳐, 한 마리의 중형견을 보고 멈춰선다. 갈색의 짧은 털을 가진 믹스견. 데리다.

화면이 바뀌면 데리에게 목줄을 채워 산책시키고 있는 성은의 시점.

[데리]  왜 당신은 안 나와요?
[성은]  나는 나를 못 보잖아.

이번에는 저 멀리 공을 던지는 성은의 손. 데리가 열심히 뛰어가서 공을 주워온다. 그 때,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https://youtu.be/MA3aKUwu-Dk


장면 바뀌면 데리를 꼭 안아주는 성은의 두 팔. 데리는 화면에 대고 혀를 내밀어 핥아댄다.

[데리]  음악이 들려요.
[성은]  내 알람이야.

자신이 먹던 간식을 떼어 데리에게 주는 성은의 손이 나온다. 넙죽 받아먹는 데리.

성은 옆에 함께 누워 자고있는 데리의 모습.

TV를 보는 성은의 시점. 데리는 알지도 못하는 화면을 옆에 앉아 가만히 보고 있다.

이번에는 화면이 물에 번진듯 흐리다. 성은이 울고 있는 듯. 데리는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핥아준다.

잔디밭을 달리는 데리.

데리가 쪼그려 앉아 풀죽은 표정으로 있다. 성은에게 혼나는 중인 것 같다. 그 옆으로는 엎어진 양념통이 보인다.

비가 내리는 날. 데리가 비를 쫄딱 맞으며 성은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

[데리]  좋아보여요.

동물병원 진찰대 위에 엎드려 있는 데리. 온 몸을 벌벌 떨고 있다. 주사가 데리의 둔부에 꽂힌다.

꽃 냄새를 맡는 데리.

거울에 비친 성은과 데리의 모습.

[성은]  나다.

베란다에서 가만히 밖을 내다보고 있는 데리.

밥그릇에 코를 박고 열심히 밥을 먹는 데리.

성은의 손이 데리에게 꼬깔모자를 씌워준다. 생일인가보다.

현관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오는 데리.

찢어진 책들로 난장판이 되어있는 거실. 한쪽 구석에 데리가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 성은이 집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는 모양이다. 데리는 덩달아 신나서 깡총거린다.

성은이 손을 내민다. 그 위로 데리가 손을 올린다.

붉은 빛이 번쩍인다. 앰뷸런스의 불빛인듯 하다. 피를 뚝뚝 흘리는 성은의 팔.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다.

멀어지는 차 안. 공터에 앉아있는 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데리는 쫓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데리]  사랑해요.

비와 때에 절어서 어디론가 걸어가는 데리.

데리가 열심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처마 밑에 엎드려서 비를 피하고 있는 데리.

아까 그 공원. 나무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데리. 나무 앞에서 멈춰서더니 성은을 돌아본다. 너무 멀어서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데리가 다시 성은을 향해 달려온다. 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거리. 영원히 달려도 데리는 오지 못한다.




S#6

잘가, 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