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국. 영국에서는 몇 년 사이 기타 밴드 음악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TV나 라디오를 켜면 The Strokes, The Libertines, The White Stripes (많은 ‘The’ 밴드들), Franz Ferdinand 등등 시대를 풍미한 사운드의 걸출한 밴드들의 음악이 매일매일 흘러나왔다. 가히 ‘기타의 시대’라고 불리울 법한 시대였고, 바야흐로 ‘마이스페이스’의 전성기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밴드들이 유명해지려면 레코드 레이블이 필요했고 TV와 라디오에 나와야 했다. 그런데 가능성과 승산이 있는 다른 방법이 생긴 거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확실히 무슨 뜻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지만, ‘트렌디한’ 밴드들이랑은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느낌이 있었다. 당시 나는 Radiohead, Pixies, Oasis 같은 소위 구닥다리 음악을 들으며 ‘난 힙스터 음악이 싫어. 요즘 인기가 많은 기타 밴드들은 옛날 밴드들에 비해서 깊이가 없군. 트렌드가 곧 바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8월에 소문이 났다. 레딩 페스티벌의 제일 작은 텐트 스테이지에서 어떤 무명의 밴드가 관객이 너무 많았다고. 텐트가 꽉 들어차서 - 아니, 넘쳐흘러서 - 텐트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메인 스테이지를 보는 사람들보다 그 ‘무명의 밴드’를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바로 악틱 몽키스 Arctic Monkeys였다.
신기한 밴드였다. TV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안 나오는데 팬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에 나는 Radiohead의 ‘Fake Plastic Trees’를 치면서 ‘어쨌든 이름이 Arctic Monkeys인데 너무 바보 같아서 걔네 음악은 당분간 안 들어도 될 것 같다’고 무시했다. 주변에서도 ‘악틱 몽키스'를 아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에 지고 말았다. 2005년 말 Arctic Monkeys를 웹에서 검색했다. 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When The Sun Goes Down’이란 곡의 뮤직 비디오가 있었다. 기대도 안 하고 보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가 그대로 나타난 영국의 거리와 꾸밈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상이었다.
헐. 이 밴드 진짜다. 난 사랑에 빠졌다.
그때 비로소 이해했다. 저기 바깥 세상 어딘가에, 어떤 혁명이 시작된 거였다.
어떤 사회적 의식이 있는 가사 하나가 기억난다.
‘What a scummy man/
Just give him half a chance I bet he’ll rob you if he can’
(쓰레기 새끼/
기회만 주어진다면 너를 도둑질할 걸)
밴드 멤버들은 영상에 나오지 않았다. 멋졌다. 그 다음 달에 Arctic Monkeys의 데뷔 음반이 나왔고, 나는 매일 들었다. 거기 나온 모든 노래의 기타 코드를 익혔다. 근데 뭔가 부족했다. 밴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시골에 살아서 큰 공연장이 없으니 그들을 볼 기회가 절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좀 미스테리한 밴드였으니까, 티비에도 안 나오고... 희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토미, 레딩 페스티벌 알지? 오늘 저녁에 티켓 오픈하거든. 작년에 보니까 몇 시간 안에 매진되던데. 6시부터 꼭 사 봐! 나도 할 테니까’
‘표 값은 £130야. (현 한화 약 19만 8천 원). 잊지 마, 꼭 사!’
£130... 그런 돈이 없는데. 아빠도 그런 돈을 절대 안 주잖아. 근데 돈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엔 너무 부끄러웠다.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어 알았어! 꼭 사볼게...’
레딩! 작년 레딩 때문에 Arctic Monkeys의 전설이 시작된 거였다. 그리고 작년에는 심지어 제일 작은 스테이지에서 공연했는데, 올해는 제일 큰 스테이지에서 두 번째 헤드라인으로 공연하네. 장난 아니겠는데?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공연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슬프게도 나는 레딩페스티벌에 가지 못 하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서...
‘토미, 티켓 사봤니? 웹사이트가 다운됐지? 너무 힘들었어.’
‘어, 사봤는데 웹사이트가 다운돼 버려서 안 됐네.’
‘그래... 뭐, 나 티켓 4개 샀는데, 가자.’
헐!
‘진짜!? 고마워! 아 근데 그 표 값 얘기인데, 갈 때 줘도 돼...?’
‘어... 알았어.’
내가 레딩에 가다니! 너무 신났다. 페스티벌의 밴드 라인업을 보니, 모르는 밴드가 엄청 많았다. 일단 Arctic Monkeys는 있었다. Muse? 싫어. Franz Ferdinand? 봐야지. Yeah Yeah Yeahs는 TV에서 봤는데 음반도 사고 팬이 되었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재미있겠지?
문제는 돈이었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알바는 없었고, 돈 받을 기회는 생일 날뿐.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해 받은 돈은 티켓 값과 차비를 빼면 20파운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 거기 도착하면 음식이 비싸겠지? 어떻게 버티지? 해결책으로 빵 세 덩어리를 사서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면 되겠지?
그랬다. 거기서 내 식사는 진짜로 빵과 아드레날린 뿐이었다.
2006년 8월 26일 목요일, 나는 친구 세 명과 열차를 타고 레딩에 갔다. 그 분위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젊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고스족, 메탈 키드, 런던에서 온 힙스터들, 클럽족... 각양각색의 음악적 종족들이 각지에서 다 모였다.
그 냄새는 어떻게 설명하지? 레딩의 냄새? 불. 그래, 불 냄새가 났다. 거긴 무척 자유로웠다.
Tommy Powell
[‘영국 양반'의 음악 디깅]
영국 인디의 황금기: 악틱 몽키스와 레딩 페스티벌 (프롤로그)
2005년 영국. 영국에서는 몇 년 사이 기타 밴드 음악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TV나 라디오를 켜면 The Strokes, The Libertines, The White Stripes (많은 ‘The’ 밴드들), Franz Ferdinand 등등 시대를 풍미한 사운드의 걸출한 밴드들의 음악이 매일매일 흘러나왔다. 가히 ‘기타의 시대’라고 불리울 법한 시대였고, 바야흐로 ‘마이스페이스’의 전성기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밴드들이 유명해지려면 레코드 레이블이 필요했고 TV와 라디오에 나와야 했다. 그런데 가능성과 승산이 있는 다른 방법이 생긴 거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확실히 무슨 뜻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지만, ‘트렌디한’ 밴드들이랑은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느낌이 있었다. 당시 나는 Radiohead, Pixies, Oasis 같은 소위 구닥다리 음악을 들으며 ‘난 힙스터 음악이 싫어. 요즘 인기가 많은 기타 밴드들은 옛날 밴드들에 비해서 깊이가 없군. 트렌드가 곧 바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8월에 소문이 났다. 레딩 페스티벌의 제일 작은 텐트 스테이지에서 어떤 무명의 밴드가 관객이 너무 많았다고. 텐트가 꽉 들어차서 - 아니, 넘쳐흘러서 - 텐트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메인 스테이지를 보는 사람들보다 그 ‘무명의 밴드’를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바로 악틱 몽키스 Arctic Monkeys였다.
신기한 밴드였다. TV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안 나오는데 팬이 이렇게 많다니? 처음에 나는 Radiohead의 ‘Fake Plastic Trees’를 치면서 ‘어쨌든 이름이 Arctic Monkeys인데 너무 바보 같아서 걔네 음악은 당분간 안 들어도 될 것 같다’고 무시했다. 주변에서도 ‘악틱 몽키스'를 아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에 지고 말았다. 2005년 말 Arctic Monkeys를 웹에서 검색했다. 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When The Sun Goes Down’이란 곡의 뮤직 비디오가 있었다. 기대도 안 하고 보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가 그대로 나타난 영국의 거리와 꾸밈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상이었다.
헐. 이 밴드 진짜다. 난 사랑에 빠졌다.
그때 비로소 이해했다. 저기 바깥 세상 어딘가에, 어떤 혁명이 시작된 거였다.
어떤 사회적 의식이 있는 가사 하나가 기억난다.
‘What a scummy man/
Just give him half a chance I bet he’ll rob you if he can’
(쓰레기 새끼/
기회만 주어진다면 너를 도둑질할 걸)
밴드 멤버들은 영상에 나오지 않았다. 멋졌다. 그 다음 달에 Arctic Monkeys의 데뷔 음반이 나왔고, 나는 매일 들었다. 거기 나온 모든 노래의 기타 코드를 익혔다. 근데 뭔가 부족했다. 밴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시골에 살아서 큰 공연장이 없으니 그들을 볼 기회가 절대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좀 미스테리한 밴드였으니까, 티비에도 안 나오고... 희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토미, 레딩 페스티벌 알지? 오늘 저녁에 티켓 오픈하거든. 작년에 보니까 몇 시간 안에 매진되던데. 6시부터 꼭 사 봐! 나도 할 테니까’
‘표 값은 £130야. (현 한화 약 19만 8천 원). 잊지 마, 꼭 사!’
£130... 그런 돈이 없는데. 아빠도 그런 돈을 절대 안 주잖아. 근데 돈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엔 너무 부끄러웠다.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어 알았어! 꼭 사볼게...’
레딩! 작년 레딩 때문에 Arctic Monkeys의 전설이 시작된 거였다. 그리고 작년에는 심지어 제일 작은 스테이지에서 공연했는데, 올해는 제일 큰 스테이지에서 두 번째 헤드라인으로 공연하네. 장난 아니겠는데?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공연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슬프게도 나는 레딩페스티벌에 가지 못 하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서...
‘토미, 티켓 사봤니? 웹사이트가 다운됐지? 너무 힘들었어.’
‘어, 사봤는데 웹사이트가 다운돼 버려서 안 됐네.’
‘그래... 뭐, 나 티켓 4개 샀는데, 가자.’
헐!
‘진짜!? 고마워! 아 근데 그 표 값 얘기인데, 갈 때 줘도 돼...?’
‘어... 알았어.’
내가 레딩에 가다니! 너무 신났다. 페스티벌의 밴드 라인업을 보니, 모르는 밴드가 엄청 많았다. 일단 Arctic Monkeys는 있었다. Muse? 싫어. Franz Ferdinand? 봐야지. Yeah Yeah Yeahs는 TV에서 봤는데 음반도 사고 팬이 되었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재미있겠지?
문제는 돈이었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알바는 없었고, 돈 받을 기회는 생일 날뿐. 할머니 할아버지께 그해 받은 돈은 티켓 값과 차비를 빼면 20파운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 거기 도착하면 음식이 비싸겠지? 어떻게 버티지? 해결책으로 빵 세 덩어리를 사서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면 되겠지?
그랬다. 거기서 내 식사는 진짜로 빵과 아드레날린 뿐이었다.
2006년 8월 26일 목요일, 나는 친구 세 명과 열차를 타고 레딩에 갔다. 그 분위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젊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고스족, 메탈 키드, 런던에서 온 힙스터들, 클럽족... 각양각색의 음악적 종족들이 각지에서 다 모였다.
그 냄새는 어떻게 설명하지? 레딩의 냄새? 불. 그래, 불 냄새가 났다. 거긴 무척 자유로웠다.
[다음 호에 계속]
Tommy Powell
@gory_tommy
tommy@digg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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