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파블로프의 개 : 리트로넬로와 노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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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의 개 : 리트로넬로와 노이로제

digging editor




나는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방송국 등에서 비정규직 혹은 계약직으로 일해왔다. 2015년부터 근 6년간 일을 하며 성격도 많이 더러워지고 타협도 많이 했다. 그동안 나의 예민함을 많이 누그러뜨렸고, 둥글게 깎아 왔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자괴감에 매일 고민이 많았다. 나는 서울 변두리 소재의 성공회대학교라는 아주 작은 학교를 졸업했는데, 2~3년만 다니면 전교생 얼굴이 눈에 익을 정도로 규모가 작아 분위기가 마치 수능 없는 고등학교의 그것과 같았다. 학교 입구에는 화려한 정문 대신 학교 이름이 쓰여진 돌멩이 하나뿐이었고, 높은 건물은 기숙사 하나뿐이었다. 같은 과 사람들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오며가며 눈인사를 하며 지냈다. 과 전공 교수님들을 ‘우리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동기들도 많았다. 


나와 친구들은 취업에 대한 고민,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었지만 연애를 하거나 동아리를 하는 등 20대 초반의 열정을 쏟고 싶은 다른 분야에 더 집중하며 지냈다. 나는 작은 도서관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평상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잡다한 세상 문제들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한량의 생활을 했다. 


요 며칠간 비가 와서 그런지 나의 회사 생활에 고난과 역경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물론 참을 만했던 일들은 제껴두고- 앞으로 내가 특정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효율적으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첫 직장 상사는 데일리 온라인 뉴스 매체 회사의 대표였다. 대표 밑으로 출판영업을 하는 상무와 이사 등 연륜과 짬밥 좀 있는 40대 중후반의 아저씨들이 두셋 있었고, 그 밑으로 나, 여자 동기, 남자 동기, 출판디자이너 한 명, 이렇게 신입 직원 넷이 있었다. 그땐 조금만 잘못해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다혈질 대표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억도 안 나니 이 신문사 시절은 행복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겠다. 


두 번째 직업은 방송 취재작가 겸 조연출이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막내작가가 조연출 업무를 함께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는 취재작가지만 인터뷰는 방송사 기자들이 나가니까 취재는 거의 나가지 않았고 (3년 동안 프리뷰만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인작가 대신 기자가 기사를 쓰는 팀이었기에 내 직장 상사는 애매하게 ‘취재기자’였다. 취재작가와 일하는 것도, 사수 PD 밑에서 조연출로 일하는 것도 뭐 어렵지 않다. 노동의 강도만 빼면, 사람 잘 만나면 회사 생활은 즐겁고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매일 잠이 부족했지만 선배들은 멋있었다. 내겐 행운이었는지, 조연출/작가 시절에도 노이로제에 걸릴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다. 


내가 지금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일하고 있는 방송국 미술팀의 부장님이다. 부장님은 정직원인지 무기계약직인지 프리랜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셋 중 하나고, 정년이 아마 5년쯤 남았을 거다. 나는 미술팀 외주업체 직원으로 여기서 몇 년차 상근중이다. 부장님 자리는 다른 감독님들 자리랑은 다르게 멀찌감치 떨어져 외주업체 직원들 근처에 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건 나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지은 ‘천 개의 고원’ 이라는 책에서 ‘리트로넬로’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 한 아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하거나, 손뼉을 치거나, 걸음걸이를 고안해내고 그것을 보도 위의 선에 맞춰보거나, “Fort-Da"하고 단조롭게 읇기도 한다. 한 여자가 흥얼거린다. 새 한 마리가 자신의 리트로넬로*를 내지른다. 새의 노래가 자느캥부터 메시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악을 천 가지 방식으로 가로지른다. 푸르르르, 푸르르르. 모든 소수성들이 음악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그 음악은 막대한 역량을 조성한다. 아이들의 리트로넬로, 여자들의 리트로넬로, 종족들의 리트로넬로, 영토의 리트로넬로, 여자들의 리트로넬로, 사랑의 리트로넬로, 파괴의 리토르넬로, 즉, 리듬의 탄생인 것이다. (...)

 

우리는 리트로넬로가 음악의 기원이라고, 또는 음악은 리토르넬로와 함께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음악이 시작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트로넬로는 오히려 음악을 방해하고 몰아내거나 음악 없이도 지내게 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이 존재하는 것은 리트로넬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음악이 내용으로서 리트로넬로를 붙잡고 탈취하여 표현의 형식 안에 집어넣기 때문이며, 음악이 리트로넬로와 블록을 이루어 그것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

 


음악은 리트로넬로를 탈영토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조작이다. 리트로넬로는 본질적으로 영토적인 것이며 영토화나 재영토화를 행한다. 반면, 음악은 리로트넬로를 가지고 탈영토화하는 표현의 형식을 위한 탈영토화된 내용을 만든다. ”

 

 <천 개의 고원>(p.566~568)



 

리트로넬로는 음악이 연주될 때 어떤 악주가 반복되면서 연주되는 것을 말한다. 반복되기는 하지만 론도처럼 A-B-A-B-C처럼 같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A-B-A'-C-A"-A처럼 변주된다. 이 사무실에서 나는 파블로프의 개고, 부장님은 주기적이지 않은 리트로넬로를 통해 파블로프의 개를 미치게 만드는 방해꾼이다. 다음 글을 한번 읽어보자. 


  • ‘리트로넬로’에 대한 고찰 : 티스토리 ‘날마다 뿔옹’ 님의 글 발췌


“콧노래 혹은 흥얼거림

: 가장 강력한 영토적 배치물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영토성을 드러내는 리토르넬로는 무엇일까? 우리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영토성을 확보한다. 들뢰즈는 영토란 '환경과 리듬'을 영토화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흥얼거림 또는 콧노래이다.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아마도 그 사람은 그 공간에서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사장이 아닌 신입 사원이 회사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일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그 팀을 이끄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아무나 노래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장면을 떠올려보자. 악당이나 재벌 회장님은 항상 콧노래를 부르거나 흥얼거리고 있다. 실수로라도 그의 콧노래를 방해했다면 무시무시한 댓가를 치른다. 설마 콧노래 때문에? 물론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토성을 리토르넬로로 드러낸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기침을 하고, 펜으로 반복적인 소리를 내거나 책을 넘기는 소리를 만들면서 자신이 존재함을 드러난다. 매일 매일 드나드는 사무실, 독서실,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출근할 때마다 도서관에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소리, 행위를 구사한다.


(중략) 소리 이외의 온갖 비언어적인 잉여들 - 몸짓, 표정, 공기, 머리모양, 화장, 향수, 구두, 발검음-을 통해서 자신의 영토성을 확보하려고 하는데, 이중에서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영토화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가 울리면 나중에는 밥을 주지 아니하였을 때도 침부터 흘린다. 이때 파블로프의 개를 미치게 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밥을 주지 않을 때도 종을 울리고, 밥을 주고도 종을 울리지 않는 등, 개에게 특정 변수 값을 ‘패턴 없이’ 아무때나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그 지속 시간과 반복 주기에 패턴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리트로넬로에 무방비 상태로, 무능력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우리 부장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

  1. 오전 10시쯤 출근을 한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2. 점심 먹기 전까지 노래를 부른다. 정확히 점심시간 15분 전에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고 온다. 

  3.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2시까지 노트북으로 주식 마진 거래를 한다. 주식인지 코인인지는 잘 안 보여서 모르겠다. 

  4. 2시쯤 낮잠을 잔다. 하도 뒤로 제껴대서 의자 자체가 뒤통수 쪽으로 기울어버린 의자에 기대서, (옆자리에 다른 감독님들이 아무도 안 앉기 때문에) 빈 옆자리의 의자에 두 발을 올리고 잔다.

  5. 3시 반~4시쯤 코를 골다 잠에서 깨어 담배를 태우러 나간다.

  6.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 TV에 나오는 음악이란 음악은 죄 따라부른다. “흥~~~” 하는 콧소리로, 바이브레이션은 정확히 4도 위아래다. 너무 넓다. ‘파’가 ‘도’까지 내려간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한번 따라해보자. 아주 병맛이다. 노래를 부를 때 그 음파의 전달력은 실로 위대하다. 주파수 대역 때문에 남자의 목소리는 먼 거리까지 전달되지 않지만 가까이서는 크게 들리고, 여자의 목소리는 먼 거리까지 전달되지만 가까이에서는 그리 시끄럽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듯 내 귀에서 정말 피가 날 만큼… 그가 노래를 멈추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는 최대 10분까지 조용히 할 수 있으며, 노래를 못 불러서 죽은 귀신의 한이 씌인 듯 절대 흥얼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복도에서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면 부장님이 담배를 태우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니, 이것은 결국 ‘나는 나고, 내가 바로 나다’를 강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나의 자유시간은 부장님이 출근하기 전 딱 오전 9시부터 오전 10시, 그 단 한 시간뿐이다. 오로지 이 때에만 사무실에서 자유로이, 곤두서지 않고, 아무 소음에도 신경쓰지 않고 있을 수 있다. 아니, 견디기 힘든 소음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편히 일할 수 있다.


출근 시 내가 얻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끼지 않을 경우 : 오전부터 신경성 복통이 찾아온다.

둘째,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을 경우 : 팝이나 포크 같은 조용한 노래는 그의 흥얼거림을 막지 못한다. 적어도 갤럭시 익스프레스부터 시작해 슬립낫 정도까지는 가 줘야 그의 소리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가 나오는 그 일 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에, 이어폰 밖에서 그의 노래가 내 귀에 꽂힌다. 조용한 노래라도 들으려 치면 마치 휴대폰 진동 같이 조용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웅웅 소리가 계속된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일말의 자애심도 없이 내 사수가 선물해준 커피 텀블러로 그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가격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노래가 하고 싶으면 그냥 밤무대에 나갈 것이지, ‘너도 기타 치냐? 난 한때 음악 하려고 했는데 돈 벌려고  포기했다’ 이따위 말을 왜 나에게 내뱉는 것인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살아갈 용기가 없으면 그런 이야기는 애초부터 안 하는 편이 낫다. 


여러분들은 낙숫물로 바위 뚫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주 잘 알 것이다. 불쾌하게 아주 조금씩, 아주 작게, 거슬리게, 천천히. 


그는 도대체 왜 쉬지 않고 리트로넬로를 온 사무실 식구들에게 선보이는 것일까? 나도 모른다. 그냥 ‘영역 표시 중’인 게다. 



요새는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후 4시쯤, 노래를 대여섯 시간 동안 듣고 나면 모든 게 귀찮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불쑥불쑥 짜증이 나고 편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나의 올해 마지막 소원은 안에서든 밖에서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기적으로 살아온 리트로넬로로 무장한 사회성 결여자 꼰대들의 머리에 짱돌을 내려찍는 일이다. 


나는 연말 선물로 부장님 책상에 노래방 마이크를 놓아드리기로 결심했다. 꿰맬 곳이 있으니 바늘과 실도 함께, 오백 원 짜리 네 개와 코노 쿠폰도 함께. 



SOUL stone
soulstone@digg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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