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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산에 오르던 중 스키폴을 고정하고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앞으로 2일 간 스키를 타러 반려견인 벡과 알프스에 왔다. 그에게는 이번이 첫 알프스에서의 스키였다. 그는 리조트와 정식 스키장에서는 떨어져 스키 탈 곳을 찾아 오르고 있었다. 벡과 함께 스키장에서 슬로프를 타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벡이 마음에 들고 지금은 붐비는 시기도 아니니 벡과 함께 스키장에서 슬로프를 즐길 것을 허락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며 정중하게 호의를 거절했다. 

"어딜 가든 너무 멀리가지말고 조심하라고, 조난이라도 당해버리면 나도 곤란하단 말이야"라고 관리자가 말했다. 

그렇게 그는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 스키장에서 빠져나와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벡과 함께 스키를 타고 내려와 리조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추울 거라 예상한 그였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니 덥고 목이 말랐다. 필요 이상으로 따뜻하게 입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백팩에서 보온병을 꺼내어 차를 마셨다. 차는 어느 정도 식어 있었지만, 그는 식은차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가 목을 축이고 숨을 길게 내쉬자, 한 숨이 보온병에서 나온 증기와 포개어져 시야를 가렸다. 증기가 걷히고, 그는 만년설 위로 수 놓아진 발자국을 따라 저 아래 푸른 구릉을 탐하듯 천천히 내려다 봤다.

"벡, 가자." 

벡은 산 아래 눈이 끝나는 지점의 완연한 봄을 지켜보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바로 주인을 따랐다. 벡은 왜인지 들판이나 아스팔트보다 눈 앞에 펼쳐진 하얀 지면과 태양 빛이 마음에 들었다. 추위와 새하얀 길. 그것은 오래전부터 벡의 조상들이 달려온 길과 흡사했고 벡에게는 그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벡의 아버지는 실제로 썰매를 몰던 케럴리안 배럴 독이었다. 벡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두터운 이중모를 물려받았기에 추위에도 오래 버틸 수 있었다. 또 어머니는 보더콜리였기에 그 영향으로 무게가 23kg 정도 밖에 나가지 않아 민첩하고 총명했다. 많은 사랑과 보살핌 덕에 벡의 털은 매우 윤기가 나서 품위 있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고, 근육은 강철처럼 단단히 붙어있었다.

벡은 검정색 반점 털안에 숨긴 초록색 눈으로 그의 주인을 바라보며 주인과 한 발자국 떨어져 걸었다. 때문에 둘이 걸을때 벡의 모습은 때때로 남자의 어깨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거나 옆으로 한 걸음을 옮겨 벡을 찾고는 했다. 벡은 항상 그 위치에서 그를 뒤따랐고, 남자가 벡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벡은 두발을 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벡은 그의 주인을 정말 사랑했다. 주인이야말로 벡에게는 모든것이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발톱과 이빨이 없으며 대부분 6피트 내외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어떤 사람이든 제압할 수 있었지만, 벡은 그 힘을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필요에 따라 언제든 사나워질 수 있는 개 인것이다.


"거의 다 왔어. 도착하면 이제 너랑 나랑 신나게 내려오기만 하면 돼. 신나지?" 그는 한 손에 두 개의 스키폴을 잡고 남은 손으로 벡을 쓰다듬었다. 벡은 주인이 하는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주인이 무슨 말을 하던 벡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주인을 흠모하듯이 주인 역시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 자신을 이렇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말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주인은 하루에도 여러번 벡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고, 그때마다 벡은 매우 기뻤다. 


남자는 보온병을 다시 백팩에 두고, 알프스를 올랐다. 그는 좀 전의 휴식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오를 생각이었다. 겨울이라 해는 짧았으며 아래의 눈 쌓인 광활한 산맥을 감상해야지 하며 핑계를 대다가는 금방 어두워져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계속 멈추어 감상하다가는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때 재미도 반감될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맛있는 음식을 가장 나중에 먹었으며,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도 마지막에 읽었고 모든 생활습관이 이와 같았다. 다만, 벡을 대할 때는 달랐다. 그는 벡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으며, 훗날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이 반려동물의 짧은 삶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는 늘 벡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벡과 뛰었으며, 벡에게는 항상 최고의 먹이만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 그는 벡에게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기위해 산에 오르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림 : 김태영 

-글 : 이하준 @garip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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