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네 엄마 말인데. 상태가 그렇게 안 좋냐?" 아버지가 물었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되뇌어 연습했을 아버지가 그려졌다. "응, 얼마 남지 않았어" 내가 답했다. 아버지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는 커피를 입에 갖다 댔다.
홀을 살피던 종업원이 커피포트를 들고 와 커피가 더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괜찮다며 돌려보냈다. "그렇구나" 아버지가 커피를 내려놓고는 조용히 답했다. "이제는 음식도 드시지 못하고, 진통제도 내성이 생겨 잘 듣지 않아. 이런 거 당신 같은 사람이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레스토랑 창 밖으로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공중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과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다. "엄마는 연명치료를 원하시지 않으셨어, 내게 부담 주고 싶지 않으셔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의식이 붙어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볼 거야. 물론 당신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궁금한 게 있다면 전화로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그럼 먼저 일어날게" 엄마가 혼수상태에서도 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은 최대한 눌러 담았다. 나는 테이블 위 아무렇게나 놓아둔 차 키를 집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든!" 조금 전과 다른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왜" 내가 답했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고개를 떨군 채 다시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두 손은 손이 찬 사람처럼 커피잔을 소중히 감싸고 있었다. 나는 부화하기 직전의 알을 손 위에 두고 움직임을 느끼듯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내게 사과하고 있다’. 나는 그가 사과 따위를 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길 바랬다. 그냥 변함없이 빌어먹을 새끼였으면 했다. 아버지란 인간을 계속해서 증오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나는 잠자코 무어라 대답할지 망설였다. 그를 용서할 마음과 그동안의 미움이 나를 저울질했다. 카페테리아의 공기도 내 대답을 기다리듯 멈춰버린 것 같았다.
"꺼져 버려" 평정심을 유치한 채 대답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카페테리아 문을 열고 나오자 따뜻한 도어벨 소리가 발자국처럼 뒤에 남았다. 뒤돌지 않아도 창가 테이블에 그대로 묵묵히 앉아 있을 아버지 모습이 그려졌다. 자홍색 석양이 팬지 잎처럼 태양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이를 꽉 물고 소매 깃으로 눈을 훔쳤다. 하마터면 아버지를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사과에는 이해력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 눈에 서리가 낀 듯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들썩거리는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아 온몸에 힘을 주었다. 손발이 무거웠다. 차까지 멀쩡하게 걸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병신같이 차를 왜 이렇게 멀리 댔을까. 주차장에는 좀 전에 봤던 가족이 차에 올라타는 중이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안고 차에 태우는 동안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멀리서 손에 쥔 파란 풍선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아이에게 내 눈물은 전혀 먼 세계의 사건이 아니었다. 아이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있다. 아이가 차에 올라타고 차 문이 닫혔지만, 풍선만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운전석에 올라탔고, 차는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풍선이 하나 달린 차는 마치 초라한 웨딩카처럼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작고 분명한 행복을 이야기해주며 달렸다.
작가 이하준의 단편소설 - 카페테리아
BGM
"그래서, 네 엄마 말인데. 상태가 그렇게 안 좋냐?" 아버지가 물었다. 이 말을 꺼내기 위해 되뇌어 연습했을 아버지가 그려졌다.
"응, 얼마 남지 않았어" 내가 답했다.
아버지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는 커피를 입에 갖다 댔다.
홀을 살피던 종업원이 커피포트를 들고 와 커피가 더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괜찮다며 돌려보냈다.
"그렇구나" 아버지가 커피를 내려놓고는 조용히 답했다.
"이제는 음식도 드시지 못하고, 진통제도 내성이 생겨 잘 듣지 않아. 이런 거 당신 같은 사람이 궁금해할지 모르겠지만"
레스토랑 창 밖으로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공중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과는 다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다.
"엄마는 연명치료를 원하시지 않으셨어, 내게 부담 주고 싶지 않으셔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의식이 붙어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볼 거야. 물론 당신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궁금한 게 있다면 전화로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그럼 먼저 일어날게" 엄마가 혼수상태에서도 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은 최대한 눌러 담았다. 나는 테이블 위 아무렇게나 놓아둔 차 키를 집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든!" 조금 전과 다른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왜" 내가 답했다.
"미안하다" 아버지가 고개를 떨군 채 다시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두 손은 손이 찬 사람처럼 커피잔을 소중히 감싸고 있었다. 나는 부화하기 직전의 알을 손 위에 두고 움직임을 느끼듯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내게 사과하고 있다’. 나는 그가 사과 따위를 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길 바랬다. 그냥 변함없이 빌어먹을 새끼였으면 했다. 아버지란 인간을 계속해서 증오하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나는 잠자코 무어라 대답할지 망설였다. 그를 용서할 마음과 그동안의 미움이 나를 저울질했다. 카페테리아의 공기도 내 대답을 기다리듯 멈춰버린 것 같았다.
"꺼져 버려" 평정심을 유치한 채 대답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카페테리아 문을 열고 나오자 따뜻한 도어벨 소리가 발자국처럼 뒤에 남았다.
뒤돌지 않아도 창가 테이블에 그대로 묵묵히 앉아 있을 아버지 모습이 그려졌다.
자홍색 석양이 팬지 잎처럼 태양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이를 꽉 물고 소매 깃으로 눈을 훔쳤다. 하마터면 아버지를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사과에는 이해력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 눈에 서리가 낀 듯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들썩거리는 몸을 보이고 싶지 않아 온몸에 힘을 주었다. 손발이 무거웠다. 차까지 멀쩡하게 걸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병신같이 차를 왜 이렇게 멀리 댔을까.
주차장에는 좀 전에 봤던 가족이 차에 올라타는 중이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아이를 안고 차에 태우는 동안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멀리서 손에 쥔 파란 풍선을 내게 건네고 있었다. 아이에게 내 눈물은 전혀 먼 세계의 사건이 아니었다. 아이는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있다. 아이가 차에 올라타고 차 문이 닫혔지만, 풍선만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아 하며 운전석에 올라탔고, 차는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풍선이 하나 달린 차는 마치 초라한 웨딩카처럼 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작고 분명한 행복을 이야기해주며 달렸다.
이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