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PEOPLE l NO.10


 이태훈
(기타리스트)


“삶은 즉흥 음악이다. 틀리는 것도, 정답도 없는 것. 내 놀 거리 내가 만드는 것.”

파도치는 해수면의 광활한 자유로움 

바닷속 생생함과 치열함 동시에 표현하는

기타리스트 이태훈의 이야기

그의 열두 가지 페르소나


D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타리스트 이태훈입니다. 하하. 만나뵙게 되어 반갑다. (이곳은 어디인가?) 여긴 제 작업실 ‘소만’이다. ‘소만’은 봄의 절기 중의 하나로 ‘작게 차오르는 소소한 만족’이라는 뜻이다. 잔잔하게 오래 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D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기타를 처음 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중학교에 올라갈 때 즈음 악기를 하나 배워야 했다. 친구들은 클라리넷을 많이 배웠는데 난 클라리넷이 싫더라.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은데 옵션은 별로 없고… 청소년 회관에 클래식 기타 수업이 있었다. 그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처음엔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메탈, 펑크를 들으면서 일렉 기타를 시작했다. 어머니께 “나 ‘엔터 샌드맨’ 쳐야 되니까 일렉 기타를 사 달라”고 졸랐고,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첫 일렉 기타를 샀다. ‘가와사미’ 레스폴. 하하. 


나는 중학교 때까지 상당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는데, 우스타 쿄스케의 만화 ‘멋지다 마사루’의 캐릭터 ‘마사루’를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그건 부조리 코미디 만화고, 어떻게 보면 아주 해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냥 ‘마사루’가 너무 막 하는(?) 거다.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무 순둥순둥해서 롯데리아에서 콜라 리필도 못 받는 그런 삶을 살아왔는데, 그런 스탠더드한 삶을 살면서도 태생적인 기질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마사루 덕에 사고의 전환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때 학교를 자퇴하고 유학을 가게 됐다. 자퇴 이유는 ‘너무 지겨워서’. 난 지겨운 게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 하하. 야간 자율 학습, 그런 것들이 지겹다 못해 스스로에게 화가 나니까 ‘계속 이러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미국에 갔는데, 아무도 죽기살기로 뭘 하질 않았다. ‘잘 해야 된다’는 압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해도 뭘 해도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해서 하는 거면 그걸로 됐다. 아무거나 다 해도 된다더라. 나는 영어를 못 하니까 할 게 기타 치는 것밖에 없었다. (웃음)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하루종일 기타만 치다 보니 자연스레 밴드도 하게 됐다. 내가 있던 동네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였는데, 이웃들이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다같이 모여 앉아 연주를 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친구 아빠가 기타를 치고 있어! 친구랑 잼을 해!’ 하하. 너무 좋아. 그때부터 ‘음악이 너무 재밌다’가 된 거다. 


그 후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 음악대학에 갔다. 한 학기 동안 기능적인 것들을 이모저모 배우고 ‘한국에 와서 밴드를 하자’고 결심했다. 보스턴은 물가가 너무 비싸다. 그리고 사람들이 좀 화가 나 있다. 하하. 서부 사람들은 사람이 길을 건너면 차가 서는 스타일인데, 동부에선 건널목을 지나고 있으면 빨리 안 걷는다고 운전자들이 화내니까. 날씨도 많이 다르다. 보스턴은 엄청 덥고, 엄청 춥다. 눈도 많이 온다. 서부에서는 일 년 내내 지금 내가 입은 복장으로 살 수 있다. 조리 슬리퍼, 반바지, 긴팔 티셔츠. (웃음)

D 재작년부터 까데호가 주목받고 있다. 까데호 멤버들은 어떻게 만났나?

규철이(드러머)는 나와 외모만 다르고 내적으로는 똑같은 친구다. 살아온 방향도, 성격과 성향도, 추구하는 지향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규철이랑 뭔가 해야겠다 싶어 둘이서 밴드를 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을 정하진 않았나 보다. 뭐 이상한 것 했겠지 (웃음). 그리고 규철이와 재호(베이시스트)도 오랜 친구라, 셋이서 음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재호, 규철이랑 셋이 모였다. 만나니 음악이 계속 나오더라. 재호랑 규철이가 워낙 오랫동안 합을 맞춰 놓으니 내가 뭘 쳐도 말이 되는 거다. 경우에 따라서 나는 잠시 나갔다 와도 된다. 하하. 처음에 그렇게 EP <MIXTAPE>이 나왔다. 밸런스가 좋았다. 3인조의 가장 좋은 밸런스, 일 대 일 대 일. 여태까지는 스스로 5할 정도를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안 해도 너무 좋았다. 아니, (내가) 안 칠수록 더 좋다. 후에 규철이가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면서 현 드러머인 다빈이와 만나게 됐다. 다빈이는 또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20대가 칠 수 없는 대가성 플레이를 하더라. 그것 구경하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다빈이는 차로 따지면 ‘슈퍼 카’다. 다 된다. (웃음) ‘슈퍼 카’이면서 동시에 수납도 되고, 캠핑도 갈 수 있다. 근데 마인드는 나보다 형이고. 하하. 

D 까데호에서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음악을 하고 있는가.

위에 언급했듯,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게 열 개가 있으면 그중 네 개만 하는 것. 그리고 ‘재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하. 재호의 라인들은 멜로디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내가 뭘 해도 괜찮다. 억지로 섹션을 만들 필요도 없고, 나는 그저 베이스가 잘 들려야 할 때 잘 들리게 해주면 된다. 


음악적인 욕심과 내 소리로 채우고 싶은 양은 비례한다. 그래서 난… 요즘 헬리비전을 들을 수 없다. 너무 창피하다. 오건웅이 베이스를 이렇게 치고 있는데 내가 오건웅을 자꾸 밀어낸다. 내려가라고. (모두 웃음) 지완이 형(헬리비전 드러머)이 휘두르고 있는데 내가 많이 쳐 버린다. 와하하. 근데 그때 그렇게 해봐서 지금 이렇게 비우면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때 못했으면 지금도 다른 데서 또 그러고(?) 있었겠지?

D 가장 아날로그적이라고 생각하는 밴드셋을 지속하는 이유?

제일 재밌으니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애초에 이게 창작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행위였다거나 했다면 진작 때려쳤을 거다. 어릴 때는 산울림(소극장) 앞에서 밴드들끼리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게 너무 즐거웠다. 공연과 아무 상관 없는 음악 얘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것. ‘누구 음악이 좋다’ 해서 직접 들어보면 정말 좋은 것. 나는 일단 무조건 ‘스트레인지 프룻’에 있었다. 하하. 사람들을 만나면 대충 서로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고, 뭐가 필요하면 서로 부탁도 하고... 그런 게 쉬웠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언택트 시대니까 예전보다는 좀 힘들겠지만. 요새는 맘에 드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랑 교류하고 싶은 의향이 있어도 마주볼 일이 없다. 장르가 다른 밴드들끼리 잘 못 만나게 됐다. 예전에 공연할 때는 오프닝이 감성 풋풋 듀오에, 중간엔 펑크가 나왔다가, 마지막엔 포스트락인 경우도 많았으니까. 요샌 애초에 한 팀만 공연하는 것이 많다. 아무튼...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재밌어서 하는 거.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잖나. 돈 벌려고 했으면 C언어를 했겠지. (웃음)


결국은 이거다. 사람은 혼자 못 사니까, 항상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한테 피드백을 받아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연주를 하면 그런 피드백이 아주 즉각적이다. 학교에서도 음악을 배웠지만 내가 음악적으로 제일 많이 배운 건 합주와 공연이다. 나 혼자 음악을 하면 무언가를 예상해서 다 짜서 가잖나. 그럼 ‘틀리는’ 게 생긴다. 그런데 밴드는 틀리는 게 없다. 내가 열심히 구성을 짜서 갔는데 막상 같이 합주를 해 보니까 말이 안 되거든. 사람들이 서 있는데 표정이 좋다? 그럼 ‘뭔가 잘했구나’, 내가 열심히 쳤는데 졸고 있다? ‘아 이게 아니구나’인 거다. 근데 그런 변화가 아주 미세한 단위로 계속 일어나니까 경험치로 따졌을 때 혼자서 하는 것과 (함께 하는 건)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실수한 것만 배우는 게 아니라 옆에서 다른 멤버들이 망하는 것도 보인다. (모두 웃음) 그럼 서로 끝나고 얘기하면서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말자’ 하는 거지. 근데 똑같은 걸 다음에 했는데 잘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하는, 그런 데서 많이 배운다. 


내가 아주 지독한 사람이라 모든 공간을 내 맘대로 만들 수 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고 엔지니어링의 한계도 있어서, 결국 귀로 듣고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만들어야 된다. 라이브 준비를 열심히 한 티도 나고 노래도 열심히 불렀는데 남는 게 없다, 그럼 중요한 부분이 한번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온 거다. 한번 때려부숴(?)야 그 다음 게 들리고 작은 소리도 들리고 하는데. 혼자 음악을 하게 되면 그런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은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다. 잘 만들어놔도 컴프레서가 걸린 것처럼 너무 꽉 차 있으니까. 


D 까데호는 ‘인디 밴드’인가?

인디 밴드다. 완전.


D 이태훈이 생각하는 ‘인디 밴드’의 기준은 무엇인가.
레이블을 달고 팔린 게 아니면, 우리가 자본을 들여서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면 인디 밴드인 거다. ‘인디 음악’이라는 게 사실 장르가 아니잖나. 까데호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엄청난 밴드도 아니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밴드도 아니고, 연주 밴드다. 기본적으로 연주 밴드가 할 수 있는 맥시멈 포텐셜, ‘케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걸 너무 사랑하니까 계속해야 하는 한편, 이 씬 안에서만 고립되면 또 안 된다. 항상 밴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 그래서 일본, 태국 등지에서 공연을 하고 돌아온다. 그게 한 달 텀이거든. 그렇게 일 년이 다 가는 거다. 건강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그림은 앨범을 하나 내고 돌고, 다른 계기로 국내에서 무언가를 하고 또 해외에 가고 하는 거다. 평소 이런저런 쪽으로 기회를 찾아보면서 ‘이것도 실험이니까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이다. 하하. 


그리고 대중음악의 세계에서는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에 부응할 의지가 있으면 대중적인 세계로 가는 거다. 대중음악가는 ‘친절한 정도’인 것 같은데, 난 대중음악가가 될 수 없다. 내가 내 음악에서 친절한 걸 상상할 수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너무 낯간지러워서 못할 것 같다. 하하. 나는 공연 등 연주에 몰입을 할 때 집중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눈을 많이 감는 편이거든. 시각적인 부분을 청각에 넘겨주려고. 청각적으로 몰입해서 더욱 내가 내고 싶은 소리들을 낸다. 근데 대중음악가는 관객 하나하나에게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미소지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을 아주 ‘엔터테인’ 해야 되는데 내가 그런 걸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웃음)


D 다른 악기도 다루는지?

트럼펫, 드럼, 베이스. 데모를 찍을 정도의 실력이다. 예전에는 공연장에서 트럼펫 등 다른 악기들도 연주했는데 요새는 거의 집에서만 한다. 부끄러워서. 드디어 창피라는 걸 알았거든. 하하. 


D 많은 악기들 중 기타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게 근본적으로 잘못된 악기(?)다. 하하. 기타는 서스테인이 짧다. 관은 후우욱 불 수 있고 현도 쭈욱 켤 수 있는데, 이건 한번 ‘땡’ 치면 끝이잖나. 근데, 하면 할수록 열악함에서 나오는 것들이 뭔가 숭고해 보인다고 해야 되나. 특히나 클래식 기타는 악기의 핸디캡을 보완하는 식으로 발전*을 해왔으니까. ‘이렇게까지 했어?’ 하면서 좋아하는 거지. “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열악한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다” 이런 거다. 왜, 딱하고 안돼 보이면 더 잘 해주고 싶고 그런 거 있잖아. (웃음) 


*트레몰로 주법 등


D 악기를 선택하는 조건?

연주할 때 편한 느낌, 넥감이 나만의 조건에 맞는 기타. 나는 두꺼운 넥을 좋아한다. 그리고 하이 피치를 싫어해서 굵은 줄을 쓴다. 고음역대의 그 ‘날리는’ 소리들이 아직도 힘들어서 그렇다. 굵은 줄은 소리가 훨씬 두텁고, 특히 내가 쓰는 줄은 프렛와운드라 날리는 소리가 덜하다. 레스폴 타입 기타를 자주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펜더류 기타들은 굵은 줄을 걸기 힘들거든. 013번 등 굵은 줄을 끼우려면 도통 쓸 수가 없다. 하하. 근데 요즘에는 그냥 ‘외관’. 내가 보기에 예쁜 것을 선택한다.


D 가장 아끼는 기타는? 

다 아끼는 걸로. 다 ‘내 새끼들’이니까. (웃음)


D 까데호, 테호, 화분, 헬리비전... 현재 하고 있는 밴드만 해도 여러 개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프로젝트들을 가져가고 있다. 지금까지 했던 밴드는 몇 개 정도 되는지.

프로젝트성 밴드랑, 앨범을 안 내고 활동한 것까지 합치면 한 20~30개 가까이 한 것 같다. 그중 프로젝트 밴드 ‘화이트 리드 카라반 White Reed Caravan’은 공연도 많이 하고 앨범도 많이 내고 싶었던 밴드였는데, 앨범을 발매하지 못해 못내 아쉬운 밴드다. 밴드캠프에 음악이 있다. 





D 앞서 말한 팀들만 해도 스타일이 각각 너무 다르다. 그 안에서 같은 ‘이태훈’의 모습으로 존재하고자 하는가, 밴드마다 다른 존재로 보이고자 하는가?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여러가지 장르를 치냐고 하지만 장르가 다르고, 멤버가 다르고, 그 음악적 배경이 다르니까 각기 다른 걸 할 수 있는 거다. 우리도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직장에 있을 때 각기 다른 모습이잖나. 너무 당연한 일이다. 개별 상황마다 다 똑같은 모습이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각기 다른 페르소나로 존재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만보기 萬步機’. 스스로도 질리지 않는 음악을 하는 게 내 목표다. 코드 세 개만 쳐도 질리지 않게 하고 싶고, 곡이 길어도 안 지루하게 하고 싶다. 음악은 어쨌든 기본적으로 짝수고, 그 짝수의 32마디 패턴을 어떻게 하면 안 지겹게, 새롭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하려 했고, 하다 보니 찾은 방법이 즉흥 연주다. 즉흥 음악의 매력의 정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끝은 내가 정하는 거다. ‘오늘은 아침까지 가자’ 하면, 내가 아침을 만드는 거다. 

D ‘작곡 기계’라는 소문이 있는데.

나는 기타 전공이 아니고 작곡과다. 뭘 치든 정리를 잘 하려고 한다. (웃음) 그리고 멜로딕하게 코드를 보다 보니까 멜로디만 나오면 코드를 쓰는 게 어렵지 않게 돼서. (멜로디를 먼저 쓰는 편인가?) 그렇게 하려고 많이 한다. 


D 즉흥 연주는 기억을 다 할 수가 없잖나.

그래서 제일 도움을 많이 받는 게 모티프다. 모티프는 두 음, 세 음짜리 멜로디가 있고 그안에 리듬꼴이 들어가 있는 건데, 그런 것을 정해 놓으면, 나머지는 그것의 변주다. 그렇게 하다가 좋은 게 걸리면 녹음을 한다.


D 기타 치는 모습을 보면 마치 허공에 음표를 자유롭게 채워넣는 것 같다. 즉흥 연주를 통해 음악을 만드는 자신만의 노하우는?

내가 하려고 하는 건 고전적인 미학들을 따르되, 이런 거다. 어떤 주제로 말을 하든 더 변주를 하고 덜 변주를 해서 베리에이션이 다차원적으로 세련되게 이어지고, 곡이 끝났을 때는 마무리가 돼서 쑤욱 빠지는 느낌이 들면 좋은 곡이다. 그래서 항상 밸런스를 고민한다. 그림도 많이 보려고 하고, 좋은 책들도 많이 읽으려 한다. 좋은 책은 밸런스가 완벽하다. 어디서 무슨 사건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게 일어난다. 우리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알고 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하하. 이야기가 말이 된다는 건, 그동안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까데호 같은 경우는 다빈이가 싸대기(?)를 많이 때린다. 오히려 재호가 ‘엄마’다. 나는 ‘어, 얘 왜 저래? 엄마, 쟤 왜 저래?’ 이러면 재호가 ‘으응, 해 봐’ 이러면서 달래준다. 우리는 ‘일단 질러보자’ 주의다. 그래서 또 내가 재밌을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D 라이브 앨범을 낼 생각은? 

있다. 나중에 궤도에 오르면. 


D 학교에서 그리고 작업실에서 음악 레슨을 하고 있다. 레슨을 하는 이유, 그리고 가르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 

기타 레슨을 하는 이유는 고정 수입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 내 걸 리마인드하는 것, 그게 좋더라. 과외 학생이 젠트 장르를 하고 싶다, 하면 나도 연습하는 거다. 레슨은 내게도 유익한 부분이 많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때 내가 오해했던 부분들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기타를 크게 치면 잘 들린다? 그거 아니라는 거. 하하. 그런 걸 알려주면서 나도 리마인드를 한다. 한 바퀴 돌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본기와 구조. 나는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했잖나. 클래식 음악은 레고다. 잘 쌓아올려야 한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리면 여기든 저기든 그 구멍을 다른 데서 받아줘야 말이 된다. 


음악을 만들 때 특정한 이미지를 정해놓고 작곡하기보다는, ‘비율’. ‘내가 여기서 이만큼 했으니까 다른 데서 저만큼 해야지’ 한다. 즉흥의 경우, 쭉 연주하면서 계속 그 생각을 한다. 물론 이걸 100%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누가 봐도 이게 논리적인 연주다, 라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게 내 판타지다. 막 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렇게 하면 즉흥음악에 대한 오해가 걷어질 것 같다. 냉철하게 논리적이어야 한다.


또... 기타 배우려고 하는 친구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이거 얼마나 배워야 잘 쳐요?’ 니가 연습을 해야 잘 치지 임마. 하하. 애초에 ‘잘 치고 싶은’ 걸 전제하고 연습하니까 안 는다. 그냥 허우적거린다. 나도 그랬다. 잘 치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는데, 그걸 10년 정도 하고 나니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멍청한 짓이었지. 취미도 내가 놀러, 공 치러 갔는데 “장비를 사고 ‘현질’을 해야 공이 잘 나가더라”? 말이 안 되잖나. 놀러 나간 건데 공놀이까지도 잘 하려 하니까. 뭘 잘 해도 못 해도, 하는 것 자체로 좋은 일을 찾아야 한다. 낙서가 좋으면 그게 취미가 되는 거지. 낙서, 잘 할 필요 없잖아. 근데 낙서도 잘 하려고 하더라고. 낙서를 왜 잘 해야 돼? (모두 웃음)


D 음악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죽기 전까지 음악을 하는 것.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사람을 웃게 하는 음악’, ‘울게 하는 음악’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인 거니까. 근데 울고 웃는 내용을 많이 심어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D 부끄러워하는 모습 하나 없이 연주하고, 고민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좀 색다른 모습들을 봤다.

보기보다 생각이 많고 진지하다. 생각을 많이 하고 행동을 간결하게 하려는 편이다. 개소리는 서로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으니까 나는 연주로 다 하는 거다. 하하. 

D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 다른 점이 있을까?

똑같다. 내가 ‘새소년’이나 ‘혁오’다, 그럼 나가도 잘 될 거다. 근데 내가 헬리비전이다, 그러면 그냥 나는 다른 나라에서도 헬리비전이다. (모두 폭소) 관객 비율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하다. 인구가 더 많은 곳에 음악이 더 많은 것뿐이지.


미국에서 투어를 한다고 예를 들어 보자.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서 엘에이에 갔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갔다가 새크라멘토에 갔다가 시애틀로 올라가고 워싱턴에 갔다가 밴쿠버까지 간다. 운전해서 갈 수 있으니까. 사실 개고생하면서 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가는 데마다 한 100만 원씩은 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하루 이틀 하고 하루 이틀 하고, 그렇게 하면 기름값은 나온다. 그 정도다. 한 사람에 50만원씩 남겨간다, 그러면 대성공.


그래도 재밌다. 그것 때문에 하는 거지. 모험. 그러니 해외로 나가는 건 좋은데, 나가서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나는 처음에 영국 갈 때, 다 찢어버려야지, 하면서 글라스고에 갔는데... 내가 찢어졌다. (모두 웃음)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외국에 나가면 즐겁다! 놀러갈 생각을 하고 나가면 좋다! 내가 깃발을 꽂겠다? 아니다. 햄버거 먹고 오면 된다. 오스틴 햄버거 먹고 오면 돼. 진짜 맛있다. 하루에 두 개씩 먹으라구! 하하.

[온스테이지 플러스] 24. 헬리비젼X김오키 - 연착

D 당신의 하루는 대략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오전에 일어나면 아내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아내는 아내가 할 일을 하고 나는 1층 작업실에 내려와서 기타를 친다. 오후에는 개인 작업과 레슨을 하고, 저녁에는 합주를 한다. 주말에는 공연하고, 산책 하고, 놀러 간다.

D 지금 꿈꾸고 있는가?

뭘? 하하. 장래희망? 나의 장래희망은 뭐지? 그냥 계속 그거다. ‘좋은 연주자, 작곡가, 음악가가 되자’.


D 내년의 목표는?

똑같다. ‘좋은 공연을 하고, 좋은 연주를 하고, 좋은 사람이 되자’. 목표는 뭔가 ‘이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글래스톤베리’에 선다, 헤드라이너를 한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부산물 같은 거다. 핵심은 ‘내가 얼마나 내 행동에 만족하고, 그걸로 주변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다. 


D 인터뷰이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인가.

‘먹고 살 정도로 벌면 된다’. 실제로 그 정도 버니까 난 금전적으로 성공한 거다. 밴드 하면서 밥 먹는데 배를 안 곯으면 된 거 아닌가. 하하. 성공은 결국 자기혐오를 얼마나 걷어내느냐에 달린 것 같다. 창작인은 뭘 하든 제 성에 안 찬다. 근데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뭘 해도 성에 안 차겠지. 그걸 인정하면 자기혐오가 좀 줄어든다. 그런 걸 좀 걷어내면 (음악이) 편하게 나오고, 편하게 하다 보면 좋은 게 하나씩 나온다.


D 디깅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연주자들은 서로를 도전시켜서 더 좋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상대를 배려해서 멍석을 깔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중 후자인 사람인데, 성완이 형. 테호(TEHO) 색소포니스트다. 나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고민을 되게 많이 하고, 그 고민이 연주에 온전히 느껴진다. 내가 만난 연주자 중에 제일 고상하고, 세련됐다. 서로 맞춰 연주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돼 있다. 실제로 같이 공연을 하면 내가 (색소폰을) 타고 간다. 배려를 받는 느낌이랄까. 


D 좌우명 혹 생활 신조가 무엇인가.

‘노는 게 제일 좋아’. 으하하.


D 끝으로 디깅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공연 자주 오시고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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