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 굴다리 앞 거리에는
검은 가죽 자켓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예전 홍대 클럽 ‘스컹크헬’
앞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그들은 2024년 서울에 사는
진짜 펑크들, 도시의 해적단,
‘어반 스트라이커즈’의 멤버들이다.
‘어반 스트라이커즈’의 지향점은 생활예술이다
취미 활동처럼 가벼우면서도 퍼포먼스 위주이기에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익명성을 중시하며 멤버 개개인에 대해 알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아리송한 단체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반 스트라이커즈’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지난 가을에 열린 ‘청파문화주간’을 맞이해 ‘어반 스트라이커즈’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지지’를 만나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서브컬처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CHAPTER 1
Pioneer
#선구자 #개척자 #서브컬쳐
D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기획자이자 ‘어반 스트라이커즈’의 대장 ‘지지’라고 합니다.
D ‘지지’라는 예명은 무슨 뜻인가요?
제가 20년 정도 스케이트 보드를 탔어요. 보드를 타면서 바닥에 굴러다니고 넘어지고 하니까 항상 흙투성이였거든요. 그래서 얻은 별명이 ‘지지’예요. ‘에잇, 더러워’ 할 때의 순우리말 지지요. (웃음) ‘지지’는 유해하고 더러운 것 같지만 어린이들이 쓰는 말이잖아요. 엄밀히 말해서 심각하게 위험하지 않은 게 지지예요. 아이들이 먹으면 안 되는 것도 많은데 ‘지지’는 입에 넣어도 괜찮거든요. 저의 미약하고 적절한 더러움이 잘 보여지는, 서브컬처적인 예명이라고 생각해요.
D 당신이 하는 것은 어떤 예술 분야인가요?
옛날에는 ‘기획’이라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커뮤니티 아트’라고 얘기할래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 전체가 ‘커뮤니티 아트’인데요. 많은 사람들을 모아 그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D 독자들에게 ‘어반 스트라이커즈’(이하 ‘어반’)라는 아리송한 단체에 대해 쉽게 얘기해 주신다면?
우리가 우리를 정의하는 일은 매번 쉽지 않은것 같아요. 최근에 또 정리를 해봤는데 ‘어반’은 매너리즘에 맞서서 제3의 길을 찾는 문화예술 크루로 정리가 될것같아요. 평소에 쉽게 시도하지 않는 일들을 다같이 모여 시도해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도보고 그런 과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단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문학, 영상, 회화, 그래피티, 퍼포먼스, 음악…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D 어떻게 ‘어반’을 만들게 되었나요?
2005~2007년 즈음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첫째로 제가 사는 도시에 대한 생각,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둘째로 ‘멋을 부리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어요. 나 혼자 멋진 사람이 되서 뽐내고 싶다기 보다는, '우리'라는 개념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우리만의 문화가 있고, 우리만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서울시청 신청사를 지을 때, 일제시대 때 지었던 서울시청 건물 있잖아요. 자리가 안 나오니까 서울시에서 그걸 허물겠다고 했거든요. ‘효율적이기만 하면 우리가 갖고 있던 옛날 기억들을 부수어 없애도 된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반’은 그렇게 2011년 시작이 된 거예요. “서울이란 도시를 변화시키고 싶은 나는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지? 아, ‘충격’을 주자”. ‘도시’라는 큰 호수 안의 물을 전부 다 갈아낼 순 없지만, 호수에 돌을 던지듯 작은 충격, ‘스트라이크’를 줘서 큰 물결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홍대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무리들의 유니폼을 보게됐어요. 로고만 같고 나머지는 다 각양각색이었고 굉장히 신선하고 만화책에 나오는 느낌을 받았어요.알고 보니 일본 사람들이었어요. ‘트라이브’라는 문화 속에서 자기들 고유의 것을 만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때 그게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우리의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새로운 예술 형태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던 것 같아요.
D ‘서울의 해적선’, ‘전주의 도깨비’... ‘도시의 해적단’이라는 컨셉이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터프한 느낌인데요.
터프하죠. 모험은 쉽게 선택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저는 원초적으로 우리 일상을 뒤흔들 수 있는 가슴 뛰는 경험을 원했어요. 예를 들어 영화 ‘쥬라기 공원’ 같은 거요.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공룡이 어느 외딴 섬에 가니까 살아 있다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에요. 어떤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탐구심이 저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옛날 동화 속 도깨비굴이나 대항해 시대의 해적선 같은 세계관을 구상했어요.
예술가란 ‘파이오니어’, 선구자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어하는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요. 학술적으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겠지만요.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으로 대항해 시대에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 그들도 예술가예요. 그들이 없었으면 인류는 발전하지 못했을 거예요. 바다로 나간 사람은 극소수고, 육지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대다수인데 우리는 왜 그 시대를 대항해 시대라고 부를까요? 결국 인간이 추구해야 될 가치가 ‘모험’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림을 예로 들자면 화가들은 사진기에 의해서 밀려났어요.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을까’라고 그들은 생각했겠죠. 그때 피카소는 ‘이렇게도 그릴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해적’ 컨셉을 차용한 또다른 이유는, 듣자 하니 민주적 시스템을 해적들이 시작했대요. 해적은 굉장히 폭력적인 집단이라서 구성원 모두가 선장을 마음에 안 들어하면 바로 선상 반란이 일어나거든요. 어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이죠. 통치자가 구성원들을 다수 납득시켜야 그 배가 항해할 수 있으니까요. 저희 ‘어반’이라는 그룹의 특징에는 그런 민주적인 ‘과감함’이 있어요.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민주적이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결하죠. (웃음)
CHAPTER 2
Identity
#정체성 #멤버 #목적지
D 그럼 도시의 해적단 ‘어반’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어반’ 멤버가 될 수 있는 방법은요?
‘어반’은 ‘규칙이 없는 것’을 추구해요. 형식, 시스템, 체계에 얽매여 있지 않아요. 아무런 룰도 규칙도 없이 사람들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모여 있죠. 그래서 멤버가 되는 방법도 자유로워요. 저희는 매년 신규 모집 안내를 하고 있지만 오디션 같은 게 없어요. ‘어반’의 소식을 받는 게 다죠. ‘우리 이번에 이런 걸 할 거예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은 함께해요’ 할 때 공지를 받는 게 전부예요. 얼굴 한번 보지 않아도, 만남에 참여하지 않아도 멤버예요. 대신 활동의 기회가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하면 돌아오는 결과 또한 없는 거죠. 천천히 활동해 가면서 계속 활동하는 사람들이 남아 가요. ‘하고 싶으면 하는’ 시스템이 어반의 제일 큰 특징이랄까요.
또다른 ‘어반’만의 문화는 반말인데요. 반말을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을 것이고 그 일들이 문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서 예술적인 결과물로 나와요. 전 사실 이런 게 독특하단 생각을 못 했어요. 남들이 ‘이상한데?’ 하더라고요. (웃음) 다른 나라의 친구들도 하는 얘기가, 저희가 하는 활동들이 되게 새로운 영역이래요. 만들어진 지 2~3년이 지난 후에는 정말 비교할 데이터가 없는 독특한 단체가 된 것 같아요.
D 익명성을 추구하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왜 ‘어반’에 관심을 보일까요?
자유로움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어반’은 협찬, 스폰서도 안 받고, 등록단체도 안 하려고 하거든요. 장르적 특성상 어느 정도 불법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길거리 예술을 하기 때문에 익명성도 있고요. 협찬을 거의 받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자유롭기 위해서예요. 협찬을 받으면 ‘계약’을 하는 거잖아요. 그게 입맛을 서로 맞추는 건데, 그게 해적이 갈 길은 아니니까요. 하하. ‘어반’에는 자율성이 보장돼야 된다고 생각해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항상 남겨두고 있어요. 반대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확실하게 있죠. ‘아무리 내가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잘 만들어도, 너무나 멋진 걸 만들고 있다 한들 기존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걸 그대로 하고 있으면 그것은 답습일 뿐이다, 아무도 못 본 거면 그게 엉망진창이어도 예술이 아닐까?’ 하는 메시지요.
<Circumstances Telling Me Who I Am>
D 검은색 옷과 포인트 컬러를 통해서 ‘어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있어요. ‘어반’의 예술적 ‘추구미’에 대해서 얘기해 주실래요?
옷을 어떻게 입는다기보다는 ‘오늘날 우리는 멸종위기종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지 싶어요. 우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멋을 뺏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연투쟁에서 시작해 국가, 기업이 생겨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보면 인류는 끊임없이 효율을 추구해 왔잖아요. 쓸데없는 것들을 쳐내기 시작하면서 ‘쓸 데 있는’ 구성원들만이 살아남죠.
‘어반’에는 효율보다는 비효율과 멋과 낭만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멋이라는 건 ‘쓸 데 없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그래서 ‘어반’은 우리가 만들어보고 싶은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어느 정도 멤버끼리의 교정 압력이라고 해야 되나. ‘멋을 부려라’라는 압력이 있는 단체예요. (웃음) 들어오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멤버들의 멋의 기준에 부합하면 좋죠. 함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서로 ‘괜찮은 작업 방향, 괜찮은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활동을 계속 하게 되니까요. 이게 어반만의 룰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D ‘어반’이 이루고 싶은 궁극적 목표는요?
‘문화 만들기’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함께 무언가 더 할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발견해 보자’ 이런 거예요. 한번 살다 가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이 죽기는 싫어요. 뭔가를 남기고 싶어요.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는 게 바로 문화 아닐까요? ‘우린 으레 마지막 주 토요일에 모여요’, 이런 게 문화거든요. 어반의 ‘원 피스’는 문화예요. 남이 만들어 놓은 걸 즐기는 문화 말고요, 우리가 만든 게 남겨지는 것. 그런 문화요.
D 최근 개최한 ‘청파문화주간’에 대해 소개한다면?
청파동에 ‘어반 서울’이 자리를 잡은 지는 꽤 됐어요. 이유는 누구도 갖지 않은 무주공산이기 때문이죠. ‘어반’이 이태원, 홍대, 강남 등지에서 아무리 활동을 한다 한들 그 지역이 ‘어반’의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아무도 찾지 않았던 장소를 찾았어요.
해적이 보물을 숨기려면 응당 무인도에 숨겨야 하니까요. 여기가 약간 무인도 같은, 우리만 아는 동네거든요. 그렇게 머물다 보니 청파동에 더욱 발자취를 남기고 싶고, 이곳을 소재로 무언가 일을 벌리고 싶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씩 청파동에 관한 기획을 하려고 했죠. 그러다가 앞, 뒤, 주말 주말의 행사를 하나로 이어서 평일에도 문화적 일들을 펼치는 방식이 됐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 좋아하는 것들, 쓸데없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형태를 갖춰서 남기고 있고요. 그걸 2023년부터 이어온 거예요. 그것이 청파문화주간입니다.
D ‘어반’에서 ‘가장 우리 같다’고 생각하는 예술작품이나 페스티벌이 있나요?
단연 ‘레드’요. ‘레드’의 특징은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는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것들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인터넷 클릭만 몇 번 하면 너무나도 좋은 퀄리티의 창작물을 접할 수 있어요. 세계 유수의 작가들, 천재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세계 최고의 밴드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에요. 그때 ‘평범한 사람의 무대는 어디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요.
하고 나면 엉망진창이라서 ‘아, 이걸 또 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고 나면 다음 해에 ‘작년에 재밌었는데 올해엔 안 하냐’는 질문이 들어오는데, 저는 그게 신선했어요. ‘잘’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속하길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궁금했죠. 엉망진창인 이 고민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생각한 건 ‘이게 본질이다’ 였어요. ‘어반’이 만들어진 계기가 ‘도시는 전문가가 만드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던 것처럼요. 도시기획가, 건축가가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술에 취해서 널부러져 자는 사람들, 아무데나 빨래를 너는 사람들, 그런 모든 사람들이 이루는 게 우리 도시예요.
5년 동안 ‘레드’ 프로젝트를 하고 느낀 건 ‘아, 이게 길이지’ 였어요. 이렇게 담벼락에 험한 단어가 쓰여 있고 수능 1등급 받은 사람부터 9등급 받은 사람까지 모두가 활보하는 게 길이지, 그게 자유지, 하면서 2024년의 ‘레드’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포장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담았기 때문에 가장 ‘어반’ 다운 프로젝트예요.
클릭시 (어반스트라이커즈_스페셜페이지)새창으로 열립니다
D ‘어반’에게 ‘서브컬처’란?
메인스트림과 구분하자면 메인스트림은 안전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고, 대다수의 즐거움을 위해서 있어야 할 것. 서브컬처는 그것과 떨어져서 다른 걸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실험실이요. 다양한 실험 중에 성공한 것이 있으면 인류에게 선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 그런 실험의 장이 서브컬처인 거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Into Thin Air>(<희박한 공기 속으로> 1997, 존 크라카우어)라는 책을 감명깊게 읽었는데요. 한여름에 읽어도 추운 책이에요. 저자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산을 왜 올라갈까?’ 하면서 산을 타는 사람들과 인터뷰한 내용이 쭉 있거든요. 그 질문에는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간다’는 전설적인 답변이 있잖아요. 진짜 명답인 것 같아요. ‘그냥’.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는 건 긴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하대요. 약 8천만 원 정도 든다고 해요. 정상에 도달해도, 내려올 체력이 없으면 내려오다가 죽는대요. 만약 제가 두 달에 걸쳐서 여기에 왔고 정상이 500미터밖에 안 남았는데 한 걸음만 더 가도 죽을 것 같아요. 그럼 내려오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생각하면 내려가야 돼요. ‘오늘은 못 갔으니까 다음 주에 다시 오자’ 고 말할 수 있는 산도 아니고, 정상 등반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해요. 책에서 얘기하기를, 그렇게 해서 내려가면 평생 생각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죽는 사람들이 많대요. 결국 올라가는 선택을 하고 내려가다가 탈진해서 죽는 거죠. 정상을 봤다는 성취감까지 있으니까 ‘조금 쉬자’ 하고 잠깐 앉으면 죽는 거예요.
그게 저에게는 굉장히 크게 와닿은 내용이었어요. 전 서브컬처가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추구하는 거요. 그러니까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남들이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할 수밖에 없죠. 만약 지금 포기하면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근데 ‘고’ 하면 다시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점이 오겠죠. ‘서브’라는 게 밑바닥이란 뜻이잖아요. 저는 그런 순간에 ‘고’를 선택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서브컬처에 대한 생각은 그거예요. 마치 에베레스트 같아요. 가면 춥고, 고생이에요. 그리고 그런 길을 모두가 가면… 인류가 망하겠죠. (모두 웃음)
CHAPTER 5
Dig, Digger, Diggest Q&A
D 디깅하기(어떤 일에 집중하기 혹은 찾기)위한 자신만의 노하우 또는 에피소드?
대부분의 디깅이 사람에게서 나와요.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저에게 추천해 줘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요. 제가 듣기에 별로면 넘어가고, 좋으면 체크를 해 놔요. 유튜브 알고리즘의 역할이 원래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D 어떤 음악을 좋아하나요?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좋아하긴 해요. 각각의 음악 장르를 다 좋아하죠. 개인적인 취향을 얘기하자면 쓸쓸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얘길 들은 적 있어요. 쓸쓸하지만 그루브가 어느 정도 있는 로파이 힙합이요.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고독에 대해서 부족함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하하. 추천드리자면 ‘누자베스(Nujabes)’의 ‘러브식Luv(sic)’ 파트 3은 제가 추구하는 음악관을 관통하는 곡이고, 파트 1도 꽤 많이 들었어요. 들어보시면 ‘두루루루~’ 하는 쓸쓸한 멜로디에 힙합 비트를 얹은 거예요. 샘플링된 것의 원곡도 많이 들었어요. ‘j^p^n’의 ‘블룸 bloom’도 좋아요.
D ‘디깅’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근데 그 도움이 어떤 도움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돈이 되느냐? 그럼 또 다르죠. 개인이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 따라 디깅의 가치가 다를 거예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인생에서 흔들림을 원치 않으면 디깅을 시도하지 않아도 돼요. 다양한 것들을 파가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근데 저는 인생이란 다양한 이야기를 남기고 다양하게 탐구하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탐구하고 싶다면 디깅은 당연히 도움이 돼요. 똥 맛도 새로운 맛이죠? 그런 것도 먹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웃음)
D 좌우명, 생활 신조?
좌우명은 ‘그냥 죽을 수 없다’. 저에게 어울리는 죽음의 형태를 가지고 싶고, ‘나답게 죽었다’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생활 신조는 ‘그럴 수 있다’. 포용이죠. 그렇게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지니까요.
게릴라가드닝(guerilla gardening)
D 매거진에서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요?
‘장카설’이라고 ‘장원영’, ‘카리나’, ‘설윤’ 중에서 인터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하. 농담이고요. 오늘 다큐멘터리를 같이 봤던 ‘팡새’라는 그래피티 작가님도 좋아요. 그래피티엔 정답이 없는데, 한국인들은 거기에서 조차 마치 답이 있는 것 처럼 행동하거든요. '팡새'는 이런데 휩쓸리지 않고 자기 답을 찾는게 멋져서 추천하고 싶었어요. 그래피티라는 게 원래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거 아니었나요? (웃음)
D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우리,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자” 요. 우리나라에선 잘 하는 게 너무 중요해서, 잘 하지 않으면 쉽게 무시당하죠. 전력질주 사회니까요. 대다수가 인생을 전력질주하려고 해요. 무슨 일이든 입시를 하듯이 하려고 하고요. 잘 하고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미담도 넘쳐나지만, 잘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소수의 이야기죠.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향상심은 갖되, 너무 ‘잘 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가볍게 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동네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앞으로 가 있더라,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하는 것을 즐기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것을 산책하듯 즐겨나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해요. 선택이 아니고 ‘인간이란 그래야 한다’는 의무요. 그래야 힘이 남아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거 아니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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