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PEOPLE l NO.6


이 현 송 
(musician)


“나는 나만 좋자고 (음악) 하는 게 아니야. 성공하려고 남들 신경 쓰고 그러는 것도 아니야. 그냥 들으면 무조건 좋을 음악을 만들고 있거든. 나를 지켜봤으면 좋겠고, 좋게 봐줬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내가 잘 해야지. 음악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어떤 생각들조차도. 난 더, 더 대단한 사람, 더 큰 사람, 전보다 더 좋은 사람, 그전에 주었던 영향력은 아무것도 아닌,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 좋겠어.”

‘천재가 즐기기까지 하네’ 소리가 절로 나는 ‘크레이지 록커’의 아이콘. 대체할 수 없는 그 존재감만큼 맹렬하게 아름다운 ‘이현송’. 그가 음악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서른을 넘긴 그에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는 생각보다 차분했고, 가끔 쓸쓸해 보였고, ‘그럼에도 밝았다’. 또 인터뷰 내내 마치 밴드 멤버들이 그의 어깨 바로 뒤에 서있는 것처럼 멤버들을 항상 신경쓰고 또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 ‘이현송’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겸손하고 따뜻하게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D 만나뵙게 되어 반갑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이현송, 서른 세 살입니다. 밴드 불고기디스코 BULGOGIDISCO의 프론트맨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D 최근 근황은 어떤가?

잘 지낸다. (웃음) 가끔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소리를 듣는데 난 별일 없다. 하하. 그래서 ‘내 평균치가 거기구나, 내가 차분할 때는 원래 그렇게 느껴지는구나’ 싶다. 내가 워낙 긍정적이고, 항상 밝은 분위기메이커의 이미지라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한테 다운돼 있는 모습을 잘 안 보여주려 노력한다. 최근엔 실없는 소리도 덜 하게 되고 말수도 줄었다. 그래도 멤버들끼리 있을 때는 음악 얘기 하느라 다운될 일이 없다. ‘우리가 뭘 해야 될까’를 생각하면서 미래 얘기를 하니까. 또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완전 지나간, 지금은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하느라 좋고. 근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좀 어렵더라. 모두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어려워하긴 할 텐데, 나도 똑같다. 하하. 


인생이란 게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잖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요즘들어 예민하고 힘든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도 비슷하다. 다들 조금씩 축 처져 있고 우울해한다. 아까 내가 다운되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안 보여준다고 얘길 했는데, 하루는 SNS에 넋두리를 한 적이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평소에 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더라. ‘네가 오죽 기분이 안 좋았으면’ 혹은 ‘야, 무슨 일 있냐’ 이런 걱정들. 하하. 한번 그런 모습을 비추니까 왕래가 잘 없던 사람들한테도 연락이 오더라. 그 사람들은 나를 원래부터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가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의 밝음을 끌어내릴까 봐. 그런 얘기를 듣고 ‘아, 나도 표현을 해야 되겠구나’ 했다. 나는 다음날이 되면 다시 밝아질 수 있고, 그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거기서 또 희망을 얻으니까. (웃음)

D 인간 이현송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보면 될까?

그렇다. 한 작년부터? 지금 생각해보면 난 내가 없었다. 나는 칵스의 보컬이었고, 그 타이틀이 희미해질 때쯤 새로운 밴드의 보컬이 됐다. 밴드가 아니고 음악이 아닌 ‘나'는 아예 없더라. (사랑은?) 진하게 사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진하게 사랑을 해본 것도… 모르겠다. 많지 않다. 난 뭘까. 김선희 아들 정도? (웃음) 그래도 새로운 밴드에서는 내 얘기를 칵스에서보다 많이 하고 있다. 칵스에서는 내 얘기를 잘 안 했다. 밴드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그래요' 하고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래요’ 라고 조심스레 덧붙여 얘기하는 거지. 하하.


요즘 친구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걸 보면서 다들 많이 변해가는 것 같다. 부모님한테 잘 하기가 되게 힘들잖나. 부모님이랑 살갑게 지내면 마마보이, 파파걸이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잖나. ‘에이, 부모님? 우리 인생이나 잘 살아야지' 하는 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이젠 마마보이란 말이 탈룰라 같아졌달까. (웃음) 그러다 보니까 막… 요새 어린 나이대의 친구들이랑은 대화를 못 하겠고, 그래서 ‘내가 꼰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D 하하. 그냥 생각하는 게 다른 거다. 

맞다. 생각하는 게 다르다. 가치관, 그리고 중요도가 좀 다르다. 나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안 봤거든. 원피스도, 나루토도. 



D 헐.

하하. 어떤 만화영화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위에 언급한 얘기 같은 데서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 같다. 다른 세대라기보다 다른 연령층인 거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나이는 곧 생명이랑 연관이 있으니까. 죽음이랑 더 가까워지는 거. 



D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포기해도 되잖나. 그럼 큰 타격이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뭔가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고, 집착하게 되기도 하니까.

시간을 쓰는 게 달라진다. 그 양이 달라져서 도전을 해도 어린 친구는 새로운 도전을 하면 일 년을 즐기면서 다시 할 수 있는데, 난 지금 당장 뭘 좀 재밌게 하고 싶은 거다. 그러다 보니까 내년을 못 기다리겠고, 조급해지고. 다행인 건 지금은 조급함을 가질 수 없는 시대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어차피 못 한다. 하하. 아쉬운 건, 사람들이 즐거움이 많고 웃음이 터지고 농담도 하면 대화 사이사이에 오가는 예민한 주제들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어떤 추억들이 생기잖나. 재밌는 기억들. 근데 요새는 그런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잘 안 생기니까 대화에서 서로 신경을 건드렸던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오래 남는 것 같다. 마음에 오래 남을수록 오해가 생기고, 대화가 끝나고부터 다른 생각을 하면서 점점 멀어지고 자주 못 보고... 자주 보면 얘기라도 하면서 풀어나가고 새로운 얘기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마지막에 했던 대화가 구렸으면 요새는 가까워지기도 힘들고. (전원 웃음) 


근황은, 무대가 없어서 좀 힘들다는 것. 뭐 이건 모두의 근황이니까. 무대에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문제는 다행히 없다. 그게 있어도 또 나만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 하하. 쨌든 네, 괜찮습니다. (웃음)

D 지금은 드러머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지만,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했다. 

그렇습니다. 하하.


D 맨 처음에 드럼이란 악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맨 처음에는 베이스를 쳤다. 중학교 밴드부에 들어갔는데 다 멋있어서 포지션을 고를 수 없었다. 기타는 다들 제일 하고 싶어하길래 하고 싶지 않았다.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멋있을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베이스 치는 선배가 초등학교 때 동네 친한 형이어서 베이스를 배웠는데 별 매력을 못 느꼈고,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마침 밴드부에 남는 자리가 드러머여서 드럼을 치게 됐다.


D 드럼, 별로 안 어려웠을 것 같은데?

아니다. 못 쳤다. 완전 딱딱하고. 나는 항상 뛰어나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는 기타 치는 애가 나보다 트윈 페달을 더 잘 밟더라. 싱어송라이터 적재. 걔가 ‘드림시어터’ 마니아였거든. 그때 적재가 ‘이 곡 땄으니까 같이 해 보자’ 하는데 나보다 더 잘 하는 거야. (웃음)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드러머가 6명이었는데 사론(칵스 THE KOXX 드러머)이랑 내가 꼴찌였다. 5, 6등. 선생님이 나보고 드럼으론 학교 못 갈 거 같으니까 1년 동안 기타를 해서 예대를 가라고 그랬는데, 나랑 사론이랑 둘만 학교에 합격했다. (다른 친구들은?) 글쎄… 거의 다 요새는 직장 다니거나 사업 하고 있고. (그 꼴찌 두 명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는 거네요) 그러게요. (웃음) 아무도 모르는 거다. 중학교 때 건반 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음감도 별로, 박자감도 별로였다. 근데 그 친구는 클래식과에 진학해서 지금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더라.

D 드러머에서 기타/보컬리스트로의 전향.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론이랑 나는 거의 모든 음악들을 공유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데, 포지션이 겹치니까 같이 밴드를 할 수가 없잖나. 둘 다 드럼이니까. 누군가는 바꿔야 했다. 사론이가 자기는 노래는 영 아닌 것 같대. 하하. 그러면서 ‘네가 기타를 칠 줄 아니까 기타 겸 보컬을 해보는 게 어때?’ 해서 시작했다. 둘이 *Foals Red Socks Pugie라는 곡을 커버하면서 비슷한 결의 스트록스, 프란츠 퍼디난드 등으로 합주를 했다. 


노래에 재능은 없다. 초등학교 때는 열심히 불렀거든? 근데 부끄러워서 자주 부르지를 않으니 소리가 트이지 않아서 높은 음이 잘 안 나왔고, 첫 앨범 낼 때까지도 노래를 진짜 못했다. 와... 첫 ‘공감’. 어머니가 ‘EBS 공감 헬로 루키’를 보러 오셨을 때 ‘뭔가 본 적 없는 에너지의 밴드 같은 느낌’은 있지만 잘 될 것 같진 않으셨단다. ‘아... 저게 과연 내 아들의 천직일까?’ 하면서. (전원 웃음) 그래도 응원해 주셨다. 그후 앨범을 일 년에 하나씩 내고, 스튜디오에서 콘덴서 마이크라는 걸 처음 접했다. 노래를 부르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마이크 사용법을 차차 익히게 됐다. ‘아, 이렇게 부르면 이렇게 들리는구나’ 하면서. 그리고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봤을 때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실력과 원하는 바의 갭이 점차 줄어들었다.

스스로 ‘나는 안 돼’ 하는 순간들에는 데이브 그롤**과 데미안 라이스***가 힘이 됐다. 데이브 그롤은 말할 것도 없고, 데미안 라이스는 ‘팝 음악에서 자주 듣던 깔끔한 피치와 가창력이 아닌, 절규를 해도 음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 폴스 Foals의 보컬 야니스 필리파키스. 야니스도 노래를 엄청 잘 한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 이런 것도 록 음악의 한 스타일이구나’ 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서 ‘이런 느낌이라면 내가 할 수 있을… 까?’ 정도의 용기를 얻었다. (웃음)


*폴스 Foals : 잉글랜드 옥스포드에서 2005년 결성된 댄스 펑크 - 얼터너티브 매스 록 밴드다. 2013년 Q Awards에서 ‘Best live acts’ 상(앨범 ‘Holy Fire’)을, 2020년 브릿 어워드 ‘영국 그룹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데이브 그롤 Dave Grohl, 1969~ 은 미국의 음악가다. 록 밴드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의 리드싱어/기타리스트. 어릴 때 기타 포지션이었지만 드럼 연주에 더 뛰어나 드럼 포지션으로 바꿨다.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 1973~ 은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가로, 90년대 록 밴드 ‘주니퍼'의 멤버로 활동했다. 기타와 첼로, 바이올린, 드럼을 연주한다. 그의 솔로 데모 테잎을 듣고 감동받은 사촌이 사준 이동식 녹음 스튜디오에서 발매한 데뷔 앨범(‘O’)으로 톱 가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D 햇수로 12년을 활동했다. 이렇게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내 어머니. 만약 어머니가 없었다면 음악을 안 했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있으니까 괜찮은 음악을 하는 거다. 워낙 노래도 잘 하시고, 어머니가 내 열렬한 팬이고, 모든 곡을 알고, 따라 부르실 수 있고, 노래 맨 마지막에 드럼이 ‘따다닥’ 하는 것도 맞추는 분이다. ‘에이 빨랐다!’ 하시면서. 그 정도로 음악을 워낙 사랑하신다. 어머니뿐 아니라 그렇게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계속 노력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재밌는 일을 하면 응원해줄 사람이 있다는 거, 그 힘이 크다. 그들이 내 원동력이고, 그래서 내가 사회적인 사람이다. 공동체의식을 항상 잃지 않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냥 음악이 취미이자 특기니까. 계속 해왔던 게, 제일 잘하는 게 음악이다. 남들 다 하는 스포츠나 게임은 승부욕이 없어서 끌리지 않았다. 승부에 목숨 거는 게 뭐랄까... 노력에 비해 멋이 없는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서. 하하. 나는 투명한 걸 좋아해서 밤새 공부해놓고 ‘나 공부 안 했는데’ 하는 게 싫다. 만약 누가 게임을 엄청 잘 하는데 연습을 안 하는 척 하면 ‘아니, 승부를 위해서 혼자서 그렇게 연습한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맞다. 진짜 매운 음식 먹었을 때 이런 것도 웃겨. ‘매운데 맛있다’ 했을 때 ‘뭐가? 하나도 안 매운데?' 이러는 거. (전원 웃음) 경쟁의식 없는 예술활동이 가장 행복하다. 음악은 ‘와~ 마스터했다!’ 이런 게 없잖나. 악기도 이것저것 할 수 있고, 곡도 이것저것 만들 수 있으니까.

D 올해 초 불고기디스코 송캠프가 굉장히 화제가 됐다. 송캠프 다녀온 걸 브이로그로 만들어서 밴드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재밌었던 에피소드나 새롭게 나온 노래들이 있는지?

신규 ‘가득해’ 를 거기서 작업했다. 혼자 통기타 치면서 불렀던 ‘가득해'를 선보이는 자리에서 멤버들 모두 100% 잘 따라줘서 즐겁고 행복했다. 하. 근데 그 얘기 하다 보니까 갑자기 밴드 곡 작업 하는 게 너무 힘들 때가 생각나네. 이렇게 일사천리로 잘 될 때가 있으니까 그게 잘 안 될 때 실망을 한다. 에휴, 다 내 욕심이지. (전원 웃음) 아무튼 이런 것도 있다. 자잘한 집안일을 같이 하니까 우리들끼리 성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하고, 씻는 시간을 공유하고 출퇴근을 같이 했으니까. (작년부터 시작했나?) 맞다. (처음으로 진하게 작업한 걸까?) 그렇다. 멤버들끼리 원래 친하긴 했는데 이전에는 주변의 여러 동료들과 다같이 친한 느낌이었다. 사랑보다 리스펙트의 관계, 멋진 친구.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이 사람한테 있는데, 어떤 건 얘가 진짜 잘 하는데’ 하는 느낌이었는데 송캠프를 하고 나서는 서로 더 끈끈해졌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직후여서 돌파구가 되기도 했고. 우울감에 빠져 있고 자괴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무작정 곡 작업을 시작한 거다. ‘악기를 다 가지고 강화도로 가자. 펜션에서 허락할까?’ 했는데 너무 쿨한 주인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한방에 괜찮은 곳을 가게 돼서 잘 했다. 딱 지금 작업실 정도의 작업 공간을 강화도에서 만들어냈다.



D 아무래도 라이브가 어렵다는 것이 씬에서 이슈다.

기획, 예술 하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한다. 우리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될까. 변화의 기점에서 어떻게 하면 뒤쳐지지 않고 소통할 수 있을까... 음악을 하는 입장으로는, 퍼포머로서 (공연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내실을 다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불고기디스코는 ‘불판기획’이라는 기획 단체를 하고 있기도 해서, 좋은 기획을 만들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추구한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날 때에는 인스타 라이브를 해서 지우지 않고 남겨 놓는다. 우리 개개인은 그냥 원자, 분자일 수 있지만 모이면 우주가 되잖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였을 때 좋은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누구라도 그런 걸 즐겨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좋은 음악, 더 좋은 앨범을 만드는 것. 아, 라이브 환경은 내가 솔루션을 낼 수 없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D 불고기디스코의 가사를 보고 느낀 건 ‘예전의 화려했던 여름이 그립지만 다시 그 뜨거운 여름을 또 맞기 위해 우리는 즐기고 있다. 재밌게 놀자’ 같았다. 뜻 풀이가 맞나? 추구하는 가사나 음악의 핵심은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보고 핵심을 하나로 정리해볼 생각은 안 해봤는데. (웃음) 우리가 만든 가사는 ‘그저 지금’에 대해서 얘기한 것뿐이다. 그리움, 행복함, 좋았던 ‘옛날’과 ‘지금’, 다가올 ‘내일’에 대해 현재적으로 풀어낸다. ‘그때보다 나아질 수 있고, 더 좋아질 수 있어. 과거는 과거고 우리는 지금 잘 살아야만 해’ 이런 거지. 두 번째로 추구하는 건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하자는 거다. 주변 사람들, 친구, 부모님한테 전화 한 통 해볼 수 있게 하자는 것. 자살 방지. (하하하. 좋다)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 음악을 들었을 때 하루를 힘차게 보낼 수 있게 하자는 거다. 그런 메시지를 추구하고, 그런 가사를 쓰고 싶어한다. 


D 불고기디스코의 음악이 디스코를 중심으로 만들어져나가고 있는 이유? 

불고기디스코는 친-인류주의니까! 디스코는 현실적이다. ‘지금, 우리, 다같이, 함께’를 중시한다. 나쁜 것 없고 즐거운, 가장 평화로운 음악이자 나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최고의 장르인 것 같다. 기분 좋고, 마음이 편하고, 즐기면 되니까. 사랑스럽잖아.

D 최근 곡 작업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 내가 ‘이거 내 음악 같지가 않아, 내 게 없는 거 같아’ 했더니 멤버들이 서운해하더라. ‘내 거라고 생각을 해 줘’ 라며… 하하. 사실 내가 ‘우리 거’라고 생각하는 건 훨씬 더 ‘공동체’다. 나는 모든 것 하나하나를 배제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밴드를 밴드답게 하려고. 근데 ‘내 거’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게 또 어렵더라. 멤버 개개인이 온전하게 다 갖춰진 완벽한 밸런스가 쉽지 않다.


최근 우리 멤버 한 명이 ‘개천에서 용 나는 걸 막고 있는 게 너무 싫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게 많은 것도 싫다’ 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부정적인 단어들을 너무 많이 써서 난 좀 별로였는데 (전원 웃음) 마지막에 풀이를 잘 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가사는 참 어렵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게 좋은 가사인지 아닌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거라서. 글이 아니라 노래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잘 전달이 됐느냐?’ 이런 것도 중요하다.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볼 때는 다를 수도 있지만 ‘못 쓴 글이다’, ‘잘 쓴 글이다’ 하는 것도 결국 개인의 취향이라 더 어렵다. 그래서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가사를 마치 영화 한 편처럼 만들고 싶다. 중간에 사람 미치게 꼬아놓고 괴롭혀도 엔딩이 여운있고 기억에 남게끔 하는 거지. 듣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끄집어낼 수 있게 마지막 한 마디라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거다. 또 ‘공감해주는 듯한’ 가사가 좋은데, 모든 걸 자기 경험에 빗대어서 그냥 자기 얘기만 하는 건 어떻게 보면 공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꺼리'로만 소통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대화를 할 때 내 얘기를 상대방이 좀더 끄집어내줬으면 좋겠고, 그런 곡을 만들고 싶어하는 편이다. 


D 밴드에서 소위 ‘독재 시스템’이 음악적 방향성에서는 확실할 텐데. 

하하. 한번도 안 해봤는데. 멋있다고 본다. ‘독재 밴드’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입장을 잘 모른다. 모르다 보니 ‘와, 진짜 뻔뻔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람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만들지?’ 하는 생각은 한다. 근데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 (웃음) 나는 ‘지금 내가 말하는 게 내 생각이 맞나...? 나는 어디 있지…?’ 이러거든. 내 포지션은 ‘양보하고 다 받아주려고 하는 와중에 자기를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진짜 잘난 사람들이랑 하고 싶어서. 그럼 독재를 포기해야 되거든? 다 잘났으니까. 그래야 같이 음악하는 맛이 있다. 계속해서 존경심이 드는 상태가 좋다. 뭐 할 때마다 ‘와~ 존나 멋있는데. 너 이런 거 할 때 너무 좋아’ 하면서 멤버들한테 계속 반하는 거지 막. 아유, 내가 ‘내 게 없다’고 했던 말 듣고 (멤버들이) 너무 서운했겠네. (전원 웃음)

D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혹은 영감을 준 아티스트? 

멤버들끼리 오늘 그런 얘기 했는데. 하하. ‘지금 뭐 좋아, 얼마 전에 뭐 좋았어’ 이런 얘기.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음악,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너무 힘들다. 어떻게 뿌리를 딱 하나만 꼽나. 1등이 어딨어. 그래도 꼽자면 레드핫칠리페퍼스 Red Hot Chili Peppers랑 푸 파이터스 Foo Fighters, 더 고민해서 하나만 꼽자면 푸 파이터스. 



D 요새 자주 듣는 아티스트를 추천해 달라.

파셀스, 벌프펙(Vulfpeck, 2011년 데뷔한 미국 펑크 funk 그룹이다). 그건 불고기디스코고, 메탈은 혼자서 듣는다. 하드코어, 젠트, 이모코어 등을 좋아한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록 음악에 미쳐 날뛰는 게 좋더라. DJing을 가끔 하러 다니는데 내가 트는 건 다 그런 크레이지한 음악, 미쳐버리는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메탈도 해보고 싶다. 막 쏴대는 거. 풀 밴드 메탈 사운드가 아니라 솔로로 하는 거지. 하하. 최근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기타리스트가, 이름이 뭐더라. 다론 말라키안. 그 기타리스트가 하는 새로운 밴드** 곡을 두 개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시스템 오브 다운을 들으면 곡을 보컬이 썼는지 기타리스트가 썼는지 그 둘 성향이 딱 있는데 곡마다 분위기가 확확 나뉜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게 다론 말라키안이 갖고 있는 성향이었다. 막 미쳐 날뛰는 그런 곡들을 새 밴드에서 하더라. ‘앵그리 구루(Angry Guru)’ 라는 곡, 한번 들어보세요.


* System Of A Down.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미국의 랩 메탈 - 뉴 메탈 밴드

**  'Scars on Broadway'  의  Angry Guru (Youtube)

D 이현송의 스타일은 특이하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옷을 고를 때, 헤어스타일을 바꿀 때 자신만의 패션 철학이 있다면?

패션 철학… 와, 한 번도 이런 얘기 해본 적 없다. 나는 하나의 스타일을 쭉 고수하지 않는다. 질리면 바꾸는 것 같다. 그런 거 있잖나, ‘다짐’. ‘이 상태는 좀 싫은데, 변화해야 되는데’ 하면 그런 다짐들을 일깨우려 시원하게 스타일링을 한다. 머리는 바로 샵에 가서 자르지 않고, 내가 직접 자르다가 망하면 미용실 가서 다듬는다. 하하. 단정하게 가다가 갇혀 있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 옷도 헐렁하게 입고, ‘아, 원래 털 나는 게 사람인데 이걸 왜 맨날 다듬지? 부자연스럽지 않나?’ 하면서 수염도 길러 본다. 옷 입는 것도 자연스럽게 핏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는 체중과 연관이 있다. 하하. 자연스러워지다 보면 체중관리를 안 하다 보니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은 안 입고, 내가 자기관리 할 거야, 하면 단정하게 갖춰진 스타일로 돌아간다.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것.’ 그거다. 고정돼 있지는 않다. 나를 표현하는 거다.



D 무대 아래와 무대 위의 이현송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할 때 어떻게 다른가? 

무드가 완전 다른데, 세 종류로 나뉘는 거 같다. 첫째, 무대. 둘째, 사람들이랑 있을 때의 나. 셋째, 그냥 나. (웃음) ‘개인의 나’는 무대랑 제일 갭이 많이 크다. 개인의 나는 진지하다. 혼자 집에서 웃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하. 무대 아래에서의 나는 부드러우려고 하는 사람. ‘한컴 타자 연습’ 을 하면 ‘소나기’라고, 단어들이 하나씩 떨어지는 게임이 있다. 푸하하. (모두 웃음) 난 그걸 계속 받아치는 거다. 다섯 명이 대화를 하면 슈퍼챗에 ‘만 원!’ 하고 쭉 줄어드는 게 있거든? 그걸 내가 하고 있다. ‘으앗! 떨어지기 전에 잡아야지!’ 이러면서. 하하. 좋은 거지. 얼마나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야. (웃음) 모든 얘기를 다 들으려다 보니 내 얘기를 안 하게 된다. 다 놓치지 않고 싶어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속 시원하게 나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을 때 정도다. 지금 이 인터뷰 같은 거.


무대에 올라가서는 객관적이다. 3D 작업을 하면 공간을 이리저리 돌려볼 수 있잖아. 그것처럼 내가 지금 여기 서있으면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대형이 어떻게 보이는지까지 생각한다. 무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이는지, 주차할 때 뒤 카메라랑 사이드미러랑 다 보는 것처럼 공간을 이해하려 한다. 가장 밸런스가 맞는 곳에서 서 있으려고 하고 소리 크기도 밸런스에 맞춰 내려고 한다. 위대한 쇼를 만들어야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에서 봐도 멋진 그림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심지어 스탭들이 보는 것까지 중요하게 여긴다. 예전에는 그렇게 안 했을 텐데, 큰 무대를 많이 서보니 좀 달라지더라. 

또 중요한 건 멘트. 멘트도 항상 헛되지 않게 하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저 친구는 저렇게 하고 싶은 말을 잘 할까?’ 할 때는 그건 내가 미리 정리한 얘기들이다. (웃음)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게 좋을까?’ 미리 생각하고 말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조던 피터슨* 같은 사람 아니고서야. 것도 영어라 가능한 거다. 우리말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말 잘하기가 아직도 어렵다. 분명히 어려운 거다 그건. (전원 웃음) 그걸 잘 하는 순간… 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거고, 잘 하는 순간 허무할 것 같다. ‘아, 왜 다 먹히지?’ 이렇게 되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하하. 나는 말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조던 피터슨 Jordan Peterson은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언변의 달인’이라고도 불린다. 주 연구 분야는 이상심리학, 사회심리학, 성격심리학 등이며, 종교적·이념적인 믿음에 대한 심리학이나 성격 및 생산성의 평가와 향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페스티벌에서도 그렇고, 공연할 때 생각 없이 탁- 얘기했을 때 뻔뻔함이 가미가 됐을 때, 난 뻔뻔함이 없어야 잘 하는 것 같더라. (나는 뻔뻔한 이현송이 좋은데,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다니 의외다.) 수습 안 하고 뻔뻔했다가는 어우, 아주 실수해. 하하. 일부러 겸손하려 하지는 않지만 우월감의 스탠스에서 말하진 않는다. 그냥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거다. 내가 뱀의 머리, 선두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다같이 나만큼 점프할 수 있고 나만큼 소리지를 수 있다. 내가 ‘요만큼’밖에 못하면 관객들도 시큰둥하다. 무대에서는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사람들을 보지만 오히려 이런 데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인터뷰를 할 때 내가 어떻게 나올까, 어떻게 찍힐까 이런 건 상관 안 한다. 이런 데서도 그런 게 있으면 그건 나만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생각하는 건 안 좋은 거잖나. 그래도 평소에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다. 멋져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고 싶긴 하다. (대단하다. 천성인가? 괜히 프론트맨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감동받았다.) 오 예. 

D 좌우명, 생활 신조?

‘좋은 게 좋은 거다’ 말고, ‘나쁜 건 좋은 거다’. 모든 일에는 다 장단점이 있다. 예전에 앨범 작업하느라 가사를 계속 쓰고 있었는데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아이패드, 헤드폰,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펜이랑 노트만 들고서 가사를 전부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근데 그때까지 안 나오던 가사들이 나오더라. 하하. 만약 그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난 절대로 펜을 안 들었을 거다. 그럴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이 ‘나쁜 건 좋은 거다, 그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몰랐을 좋은 일이 또 온다’ 였다. 그건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랑은 다르다. 상황마다 좋은 게 있으니까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이용하고 내 생활에 녹여내는 거다. 녹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미래를 좀더 잘 꾸려나갈 수 있고, 나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다리가 또 부러졌지만 괜찮아’인 거지. 내가 골절이 많이 오거든. 툭하면 넘어지고, 넘어져도 크게 다친다. 몸이 다치면 힘든데 어쩌겠나. 나을 때까지 빡세게 가만히 있어야지. 예전엔 끌어당김의 법칙을 너무 믿어서, 나쁜 말을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다. (모두 웃음) 그러다 보니까 부정적인 단어만 나오면 예민해져서 내 안에서 국어사전이 막 팡~! 펼쳐지는 거지. ‘야 그거 괜찮아~ 붙을 거야’ 하면서 ‘넘어진다, 떨어진다’ 와 같은 단어는 안 쓰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서 좀더 자유로워졌다. 

D 당신의 하루는 대략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늦게 자는 편이다. 새벽 5시쯤부터 잠들어볼까~ 하는 편. 아침에 강아지가 때 되면 짖고 날 깨우는데 ‘왜 아직까지 자?' 이렇게 들려서 깨는 편이다. (웃음) 잠을 오래 못 자서 네다섯 시간 자고 일어나서 활동하다가 좀더 잔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최상의 컨디션이고 싶어서 낮잠을 자니까 잠을 두 번 자는 거다. 언제가 더 활동적인지는 스케줄에 따라 다르다. 시간이 나면 자전거를 탄다. 좋아하는 건 따릉이, 빨리 가야 되면 전기 자전거. 따릉이를 심하게 탄다. (하하. 얼마나?) 음악 들으면서 서초동까지 갔다 온다. 대교를 무서워해서 원래 다리를 못 건넜는데, 작업실이 선유도에 있을 때 멤버들이 자전거를 타고 곧잘 오는 거다. 그래서 멤버들을 따라 맨 뒤에서 같이 가 봤다. 자전거로 갈 만 했다. 그 좋은 기억으로 혼자서 다녀 보니까 너무 좋더라. 그 맛에 멀리까지 가고 그랬으니까.


D 좋아하는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잭 블랙이랑 기네스 펠트로 나오는 거. 평소에 심각한 영화는 잘 안 본다. 로맨틱 코미디도 좋아한다. 일상적이니까.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가끔 한국 영화도 본다. 예전에는 한국 영화를 잘 안 봤는데 한국어 자막을 켜고 보니까 재밌더라. 대사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자막을 켜고 보는 게 좋았다. 그리고 ‘스쿨 오브 록’ 을 좋아한다.

Five Q & A


1. 자기 분야에 대해서 어디까지 미쳐봤는가? 

내가 일탈이 좀 없다. (웃음)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도 잘 없는데, 최근에 일어난 가장 큰 일이 핫식스 세 캔을 마신 거다. 밤새 녹음을 해야 되는데 엄청 에너지 소모가 큰 곡이었다. 항상 멤버들이랑 같이 모여서 녹음을 했는데 멤버들이 ‘이번 노래는 한번 혼자 펼쳐봐라’하고 가더라. 혼자 노래할 때 핫식스가 투 플러스 원이어서 사먹었다. 마지막 세 번째 캔은 다 먹진 못했다. 와~ 각성 효과가 너무 세더라. 


2. 디깅에서 인터뷰를 해줬으면 하는 사람? 

오~ 우리 멤버들. 불고기디스코 멤버들. 또 선빈이 형. 박선빈.


3. 지금 꿈꾸고 있는가?

내가 또 사랑하는 예술은 영화인데,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음악은 내가 가는 길이고, 또다른 꿈은 영화배우다. 연기하고 싶다. 하하. 얼마 전에 독립 장편영화 오디션을 하나 봤는데 아쉽게 최종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역시 ‘스쿨 오브 록’. 뮤지컬은 영화가 더 쉽겠다 할 정도로 어려울 거 같다. 그래도 그게 사람이 하는 거니까 6개월 정도 연습하는 그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 뮤지컬 오디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안 하는 것 같다. 또 오늘 들은 얘긴데, 엠넷에서 ‘포크 어스’라고 포크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단다. 오로지 통기타로만 노래하고… 그런 것도 해볼까 한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슈퍼스타 케이’에 엄청 나가고 싶었는데 못 나갔거든. 주변에서 극구 말려서. (하하. 잘 선택했다) 하하… 또다른 꿈은 내가 하는 밴드 멤버들의 생계가 음악만으로도 여유있을 정도로 키우는 것.


4. 내년 목표는? 그리고 10년 뒤 이현송은 뭘 하고 있을까?

10년 뒤라… 정말 알 수 없지만, 10년 뒤에는 일단 아주 잘 살고 있을 거고, 배철수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음악 전문가로서 밴드 음악과 문화에 대해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얘기하면 쉽지만 미디어에서 나올 때, 오버그라운드 씬과 대중들에게도 밴드 음악을 쉽게 설명할 수 있고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 목표는 일단 밴드를 잘 유지하는 것. 이것저것 쉽사리 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권태기가 충분히 올 수 있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의지하면서 갈 수도 있다. 밴드의 시간은 벌써 1년 반이 흘렀는데 아직 맛을 제대로 못 봤다. 공연의 맛, 성원의 맛, 인정받는 맛. 차츰차츰 천천히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다. 페스티벌 나가는 건 사실 올해 꿈이었는데, 내년에는 상황이 좀 나아질까? 페스티벌 나가고 싶다. 하하. 음악을 만들 때 페스티벌을 상상하면서, 함께 즐기는 걸 상상하면서 만들곤 하거든. 


5.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한마디? 

내가 2015년에 제대를 했는데, ‘얘네가 이전처럼 멋진 음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다들 하더라. 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회사나 주변 사람들이 못 믿더라. 우리가 멋있는 음악을 할 거라는 걸. 사람들은 포텐셜을 잘 모른다. ‘아, 신뢰가 없구나… 우리의 재능이나 매력에 신뢰가 없구나’ 싶었다. 상상력이 왜 이렇게 작은 거야! (웃음) 칵스는 그것대로 좋고, 내가 지금 하는 밴드도 자연스러운 거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과거에 내 음악을 좋아했다면, 나의 기류가 흘러가는 걸 부드럽게 따라가줬으면 한다. ‘칵스가 아닌 불고기디스코는 아직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 우연히 들으니 좋았다’ 하는 피드백을 들으면 참 좋겠다. 난 분명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는 나만 좋자고 하는 게 아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하려고 남들 신경쓰며 살지도 않는다. 그냥, 들으면 무조건 좋을 음악을 만들고 있거든. 들어서 별로면 뭐 하러 만드나. (웃음) 우리 어머니가 듣고 있기 때문에 안 된다. 그렇기에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근데 이건 그냥 떼쓰는 거고, 그러려면 내가 잘 해야지. 음악만 잘 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도 계속 보여주고. 난 더, 더 대단한 사람, 더 큰 사람, 그전보다 더 좋은 사람, 그전에 주었던 영향력은 아무것도 아닌,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D 마지막으로 디깅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 인터뷰를 읽으셨다면 잠깐 동안 즐거운 시간 되셨길 바라요. 제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마음 쓰지 마시고 주변 사람들 잘 챙겨주세요. 소통을 안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메신저도 친구가 어떤 상황일지 모르니 부담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안 하곤 하는데, 여러분은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 좋겠어요. 너무 집에 혼자 계시지는 말고요. 하하.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보통 집콕을 해야 되잖아요. 그럼에도 다행인 건 우리가 랜선으로라도 소통한다는 것 같아요. 심심하니까, 외로우니까. 전 처음에는 그게 부질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가족들과 잘 지내고, 엄마한테 전화하세요! 엄마라기보다, 다같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이 현 송artist


Credits



Producer : Mox

Photographer : suki stranger

Videographer : Tae-young, Kim

Editor : Yesol, Han





















 이현송 music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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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ducer l Mox
  Photographer l Sukistrager
  Videographer  l  Tae-young Kim

  Editor  l  Ye-sol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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